세월호 침몰사고를 지켜보며 온 국민은 무력감에 빠졌다.
우리 사회에 만연된 어른들의 탐욕과 무사안일, 안전 불감증에 극도의 무책임함이 결합된 결과다. 참으로 비통하다.
국민 모두가 이들을 구조하기 위해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과학자들 역시 국가적 재난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과학적 분석이나 데이터를 제시하는 정도가 전부였다. 잠수사들에게 구조작업을 맡기고 텔레비전 화면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무력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과학기술 또는 과학자의 핵심적인 역할은 국가적 재난이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상황을 사전에 예측해 대비토록 하거나 사고 예방책을 마련하는 연구개발에 집중하며, 과학기술을 동원해 국민의 안전과 건강이 보장될 수 있는 대응 매뉴얼을 제작하는 것이다.
실제 재난현장은 평소 반복적인 훈련으로 매뉴얼을 철저하게 체화하고 있는 현장 전문가들의 자리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현장을 장악할 수 있는 현장 전문가에게 권한 위임이 잘 되지 않는 체제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은 현장 전문가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좋은 교훈이다.
세월호 침몰 현장인 맹골수도 조류도 빠르지만, 인근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물살이 센 울돌목이 있다. 임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13척의 배로 133척의 일본함대를 물리친 명량해전 현장이다. 현장상황에 어두운 조정이 가토군을 바다에서 맞아 치라는 불합리한 명령을 거역한 죄로 장군을 옥에 가두고 원균을 삼도수군통제사로 대체했으나 조선 수군은 거의 궤멸되는 큰 손실을 입고 나서야 이순신 장군을 다시 불러들여 왜군을 맞게 했던 것이다.
현장 전문가를 중히 여기지 않는 우리나라 체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듯하다.
2012년 우리나라에서 재난·재해 및 안전사고 분야 연구개발(R&D) 비중은 약 1.1%인 1780억 원에 불과했다.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의 2012년 기술수준평가에 따르면, 재난·재해·안전 분야 전략기술의 최고 기술국인 미국 대비 우리나라 기술수준은 72%이고, 기술격차는 6.3년으로 조사됐다. 예상보다 열악한 투자환경에 기술격차도 적지 않지만, 지금이라도 새로운 재난대응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쓰나미, 지진, 태풍 등과 같은 물리적 거대 재난들의 발생 추이로 볼 때 우리나라도 영원한 안전지대라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지난 2003년부터 2012년까지 여섯 번의 태풍피해로 인해 연 평균 41.7명의 사망자를 기록했고, 이 기간 중 총 7번의 특별재난지역 선포가 있었다.
이러한 물리적 재난뿐 아니라 화학물질 사고, 방사능 사고 등이 있으며, 노로바이러스나 AI 등과 같이 작은 미생물이나 바이러스에 의한 재난도 예외일 수 없다. 오히려 작은 바이러스에 의한 재난이 더 대처하기 힘들 수도 있다.
크고 작은 재난은 언제고 일어날 수 있으며 피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재난을 겪으면서 지속적으로 재난을 분석·예측하고 극복하며 점차 안전한 세상을 구축해나가야 할 것이다.
선박 침몰사고 현장에서는 해양사고 전문가의 목소리가 최우선 돼야 하고, 건물붕괴 현장에서는 건축 구조물 전문가 또는 붕괴사고 전문가의 판단이 상황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제 과학자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국가적 재난에 대한 과학적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 사회도 점차 전문가와 과학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현장 전문가 중심적인 체제로의 변화가 함께 이뤄지기를 기대한다.
세월호 희생자들의 명복을 기원하며, 다시는 이런 인재가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정광화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장 khchung@kbs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