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IT 시장에 ‘홈 엔터테인먼트’ 바람이 불고 있다. 스마트폰 운용체계(OS)로 IT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애플, 구글부터 인터넷 유통 강자 아마존이 가세하며 홈 엔터테인먼트 분야는 점점 뜨거워지는 상황이다.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기존 케이블TV 업체가 패권을 잡고 있었지만 인터넷 비디오 수요가 늘어나며 IT 업체들도 앞다퉈 셋톱박스를 출시하고 있다. 콘텐츠 소비가 인터넷으로 급격히 기울자 새로운 시장을 잡기 위한 업체 간 경쟁이 본격적으로 막 오른 것이다.
◇인터넷 기반 셋톱박스의 등장
인터넷 기반 셋톱박스는 아이튠스로 미국 비디오, 오디오 콘텐츠 판매를 장악했던 애플의 ‘애플TV’가 출시된 지난 2007년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했다. 아이팟에서의 인기를 안방으로 끌어들인 전략이다. 당시에는 구매한 콘텐츠를 아이팟과 TV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정도에 그쳐 주력 사업은 아니라는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셋톱박스 ‘로쿠(Roku)’의 등장으로 홈 엔터테인먼트 시장은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로쿠는 인터넷 비디오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 출신이 만든 셋톱박스 업체다. 콘텐츠 다운로드 방식의 애플TV와 달리 넷플릭스, 훌루 등 스트리밍 서비스가 주력이다. 지난해 출시한 로쿠LT는 스트리밍 비디오에 대한 소비자 요구에 부합하면서 애플TV의 아성을 넘어 시장에서 호평을 받았다.
구글도 ‘크롬캐스트’로 셋톱박스 시장에서 본격적으로 경쟁을 시작했다. 작은 USB 메모리 형태의 동글 단말기로 TV에 꼽기만 하면 인터넷 스트리밍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게 특징이다. 크롬캐스트의 성공으로 구글 역시 홈 엔터테인먼트 분야를 주력 사업으로 키울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불붙은 IT 기업들의 셋톱박스 경쟁
지난달 아마존의 셋톱박스 출시는 글로벌 IT 업계의 셋톱박스 경쟁이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애플은 올해 신제품을 출시하고 이어 셋톱박스가 없던 마이크로소프트도 제품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존은 지난달 자사 첫 셋톱박스 ‘파이어TV’를 선보였다. USB 동글이 아닌 애플TV와 같은 형태로 넷플릭스와 훌루, HBO GO 등 주요 스트리밍 비디오 서비스를 포함한다. 게임 컨트롤러도 별도로 판매하며 기존 콘솔 게임 시장까지 노렸다.
올 하반기에는 신제품이 더 가세하며 셋톱박스 시장이 더 치열해질 전망이다.
애플은 지난해 1000만대를 판매하며 전년보다 두 배 이상 성장한 애플TV 사업을 더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올해 초 열린 연례주주총회에서 팀 쿡 애플 최고경영자(CEO)는 “애플TV가 더 이상 취미 사업으로 부르기 어려울 정도로 성장했다”고 밝힌 바 있다.
마이크로소프트도 셋톱박스 개발을 진행 중이다. 게임 콘솔 ‘X박스’로 안방 경쟁에 나섰지만 비디오 스트리밍 서비스에 특화된 제품으로 시장 경쟁을 하겠다는 전략이다. 새로 개발 중인 기기는 동작인식 센서인 ‘키넥트’와 ‘X박스’ 등 윈도 기반 기기들과 연동돼 쉽게 사용할 수 있는 제품으로 알려졌다.
◇경쟁 키워드는 ‘스트리밍’
홈 엔터테인먼트 경쟁에 뛰어든 IT 업체들은 ‘스트리밍’을 키워드로 내걸었다. 비디오, 게임 등 콘텐츠 소비가 DVD 등 저장매체에서 인터넷 다운로드로, 또 다시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존은 셋톱박스 출시로 자사 콘텐츠 유통 사업에도 힘을 키운다는 전략이다. 파이어TV에 넷플릭스 등 스트리밍 서비스와 함께 탑재된 자체 유료 멤버십 서비스 ‘아마존 인스턴트 비디오’의 이용도 늘 것으로 분석된다. 셋톱박스는 기존 태블릿 PC인 ‘킨들 파이어’ 제품군과 함께 이용 확대를 견인할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과 구글도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은 기존 아이튠스의 오디오, 비디오 콘텐츠를 스트리밍 서비스하기 위해 주요 콘텐츠 제작사들과 논의 중이다. 새로운 애플TV 출시와 함께 자체 스트리밍 서비스 개시가 유력하다. 구글 역시 경쟁이 치열해진 안방 시장을 잡기 위해 조만간 가칭 ‘안드로이드 TV’로 불리는 새로운 비디오 스트리밍에 특화된 제품을 발표할 것으로 점쳐진다.
셋톱박스로 눈을 돌리는 마이크로소프트와 함께 게임 콘솔 강자로 불리는 소니도 스트리밍 서비스 강화에 나선다. 회사는 올 여름 클라우드 스트리밍 서비스 ‘플레이스테이션 나우’를 선보인다는 계획이다. 이 때문에 ‘플레이스테이션(PS)’의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첫 게임 콘솔을 발표한 후 지난해 PS4까지 하드웨어 사양을 올리며 특화된 게임을 선보였지만 이용자의 소비 행태가 빠르게 스트리밍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IT 매체 리코드는 “소니가 플레이스테이션 신제품 출시를 전면 부정하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기기 출시에 집중할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고 해석했다.
김창욱기자 monocl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