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소비자가전 행사인 ‘CES 2014’의 주요 전시 아이템 가운데 하나가 ‘3D 프린터’다. 가전 행사에 3D 프린터가 당당히 명함을 내민 것이다. 이 행사만이 아니다. 이후 국내외 주요 IT전시회에는 어김없이 3D 프린터가 등장했다. 얼마 전까지만해도 ‘이상적 모델’이었던 3D 프린터가 우리 삶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당장 산업계의 움직임이 빠르다.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글로벌 기업들도 앞다퉈 3D 프린터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당연히 장밋빛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은 3D 프린터를 미래 신산업혁명을 주도할 10대 유망기술로 꼽았다.
이처럼 3D 프린터가 빠르게 부상하는 배경으로는 기술 특허 종료를 대표적 요인으로 꼽는다. 1984년부터 활용되던 3D 프린터 기술 관련 핵심 특허가 종료되면서 공유경제 트렌드와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는 것이다. 이에 주요국들은 차세대 성장동력원으로 확신하고 과감한 투자를 펼치고 있다.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은 산업 고도화 일환으로 3D 프린팅을 적극 육성한다. 자체 독창적인 산업에 관심을 나타내는 독일은 바이오 프린팅 분야에서 나름대로의 영역을 구축하고 있다. 중국 등 대량생산 기반을 갖춘 나라에서는 생산 혁신 일환으로 적극 활용하려는 움직임이다.
3D 프린터가 각광을 받는 것은 다양한 이점 때문이다. 제조의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시제품의 제작 비용과 시간을 크게 줄여준다. 생산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간단하게 디자인을 수정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별도의 금형이 필요 없다. 이는 개발, 생산 과정에서 비용을 대폭 줄여준다. 시제품 제작을 외부에 맡기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제작하는 만큼 내부 기밀이 유출되는 것도 막는다. 세계적인 스포츠카업체인 람보르기니는 시제품 제작에 3D 프린터를 사용해 제작 시간과 비용을 기존과 비교해 6분의 1과 8분의 1로 줄였다. 국내의 현대모비스도 실린더 헤드를 비롯해 일부 부품 시제품을 3D프린터로 제작했다.
맞춤형 제작이 용이하다는 점도 큰 이점이다. 기본적인 3D 출력물의 디자인 파일만 있으면 디자인을 매번 바꾸어도 추가비용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디자인을 변경해 출력했다가 결과물이 마음에 안 들면 파일을 열고 이전 모델로 클릭 한번만으로 돌려 놓을 수도 있다.
이는 다품종 소량 생산에 특히 강점을 지닌다. 일례로 덴마크의 와이덱스(Widex)라는 업체는 3D 프린터와 3D 스캐너를 활용한 보청기 제작 기술로 맞춤형 제품 제작에 성공했다. 3D 프린터를 활용한 샴쌍둥이 분리수술에 성공하거나 환자에게 적합한 인공뼈를 3D 프린터로 만든 사례도 들린다.
복잡한 형상 제작이 가능하고 재료비를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내부가 비어있는 형상을 쉽게 만들 수 있어 버리는 재료를 줄인다. 또 한 번에 찍어 낼 수 있기 때문에 여러 단계의 제조공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 인건비와 조립비용을 줄일 수 있다.
3D 프린팅은 우리 삶에 많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단적으로 개인의 상상력·창의력을 쉽게 구현할 수 있다. 점차 크기와 소재의 한계를 극복한 3D 프린터가 나온다면 자동차·항공기뿐만 아니라 운동화·음식물 심지어 주택까지 만들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모든 부품을 컴퓨터로 디자인해 설계 후 3D 프린팅으로 만든다. 음식물도 탄수화물·단백질 등 영양소별로 분말형태로 저장 후 출력해 제조하는 과정을 거치면 된다. 심지어 의약과 바이오 분야에서도 기존과 다른 분자구조와 물질 조합으로 새로운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3D 프린팅의 발전은 주요 산업 지형의 변화로 나타날 것이란 예상이다. 제조업에서는 기업의 설계 역량이 중요해진다. 얼마나 창의적이고 우수한 설계 능력을 보유한 인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따라 기업의 경쟁력이 결정된다. 물류와 소매, 유통에도 혁신이 뒤따른다. 규모의 경제시대에 경쟁력으로 꼽혀 왔던 대규모 생산설비의 가치도 소멸될 것으로 보이다.
이는 우리 산업에 있어 기회며 동시에 위기가 된다. 대규모 생산 능력 등 기존의 경쟁력 요소는 더 이상 힘을 내지 못한다. 반면에 새로운 변화 트렌드에 적극 대처하고 이를 잘 활용한다면 더 큰 경쟁력을 갖는다. 새로운 성장동력도 탄생한다. 일부 산업은 기존 주류산업을 위협할 것이다. 완전히 새로운 영역을 만들어내기도 할 것이다.
3D 프린팅 기술이 순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총과 같이 무기류를 제작해 범죄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 출력소재의 유해성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각국이 3D 프린팅 시장 선점에 적극 나서는 것은 위협요인보다는 기회요인이 많기 때문이다.
김준배기자 j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