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룰’, 고객과 건강한 긴장관계가 생존 비결
휴대폰 부품 업체 A사는 과거 노키아·소니에릭슨·삼성·LG 등 내로라하는 휴대폰 회사를 모두 고객으로 뒀습니다. 고객이 성장할수록 A사도 쑥쑥 컸겠지요. 당연히 규모가 더 큰 회사에 물량을 더 많이 공급하고 싶은 욕심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세계 최대 점유율을 자랑하던 노키아가 “한 고객 비중이 30%를 넘어서면 건강한 구조를 유지하기 어렵다”는 조언을 했다는군요. 당시 노키아는 선진적인 협력사 관리로도 명성이 높았지요. 물론 지금은 애플이나 삼성전자를 고객으로 확보하지 않으면 제대로 된 부품회사라는 이름조차 얻기 힘들게 됐습니다. 하지만 A사는 여전히 이 30% 룰을 믿습니다. 그 사이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수십년 역사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이 바로 고객과의 ‘건강한 긴장 관계’였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을’인 건 매한가지.
국내 한 소재부품 업체 B사는 올해 삼성전자의 ‘혁신기술기업협의회(혁기회)’에 선정됐습니다. 이 회사 사장이 혁기회 출범식에 가서 다소 뻘쭘(?)했다는데요. 소프트웨어(SW)를 주력으로 하는 협력사들이 많아 대화 자체가 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쓰는 용어와 산업 생태계가 너무 달라 이해하기가 힘들었던 것이지요. 하드웨어(HW) 입장에서는 전혀 다른 세상 이야기였답니다. 그럼에도 딱 하나, ‘가격’ 이야기가 나오니 바로 공감대가 형성됐다는데요. 한 SW 업체 사장이 국내에서 한 카피당 5000만원에 팔았던 제품을 일본에서는 20억 원을 받았다는 푸념 섞인 얘기를 했다고요. 국내에서 SW 가치를 너무 인정해 주지 않는다는 말이었죠. 물론 소재부품 가격이 그 정도로 고무줄이지는 않지만, 국내에서 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건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고요. SW든 HW든 ‘을’ 모두의 바람은 고객이 제품 탄생에 대한 노력을 제대로 인정해 주는 것이겠죠? 최소한 이 부분에서만큼은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기가 막힌 중국의 인재 사랑, 우리는?
1분기 실적이 윤곽을 드러내면서 팹리스 업계에선 한숨 일색입니다. 그나마 잘했다는 업체들도 적자를 겨우 면한 수준이라네요. 시황은 더 나빠질 것으로 내다봅니다. 어려가지 어려움이 있지만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른 속도로 크고 있는 중화권 팹리스 탓이죠. 여기에 팹리스의 핵심 자산인 설계 인력도 국내외 대기업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네요. 악화되는 시장에 인력난까지. 이러다 국내 팹리스 산업 자체가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옵니다. 중국은 미국 실리콘밸리 출신 엘리트 두 명만 모이면 국가 차원에서 자금은 물론 집과 자동차까지 지원해주면서 팹리스로 키운다고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정부도, 업체들도 그럴 여력이 없습니다. 참 답답한 현실입니다.
○…이익이 좋아도 걱정, 나빠도 걱정, 협력사는 웁니다.
스마트폰 가격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대다수 소재부품 업체들의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일부 삼성전자 협력사는 지난 1분기 수익률이 너무 높아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한 번에 설비투자 감가상각을 집행하거나 연구개발(R&D) 비용을 늘려 이익률을 낮추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회사가 수익이 많이 나는데 뭐가 문제냐고 의아해 하는 분들도 있겠죠. 그러나 삼성전자 협력사 중 판가인하 압력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곳이 드물죠. 1분기 실적이 좋게 나오면 다음 번 협상 자리에서 무시무시한 판가 인하가 뒤따르죠. 열심히 일해 떳떳하게 많은 수익을 냈는데 불안해 하는 협력사들. 이게 제대로 된 걸까요.
매주 금요일, ‘소재부품가 뒷이야기’를 통해 소재부품가 인사들의 현황부터 화제가 되는 사건의 배경까지 속속들이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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