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시스템 사업자 선정 시 관행적으로 요구하는 사전필드테스트(BMT)의 과다한 비용이 중소업체의 경영난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높다. 1억원짜리 사업에 BMT 비용만 1000만원에 달해 순익을 따지면 결국 손해인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사례까지 나왔다.
장비 도입 전 성능을 검증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수주에 실패한 업체는 타격이 커 상생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특히 BMT가 성능검증보다는 구매 담당자의 책임회피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15일 통신장비 업계에 따르면 최근 2억원이 안 되는 한 지방자치단체 장비도입 사업에 BMT 비용만 1000만원이 들어 참여 업계가 어려움을 겪었다. 한 장비유통 업체는 사업 참여를 위해 수천만원 상당 장비를 구매하고 추가 비용을 들여 BMT를 실시했지만 수주에 실패할까봐 노심초사다.
BMT 비용 논란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달 진행된 공군 노후 네트워크 교체 사업에서는 BMT 비용만 7000만원이 들었다. 곧 진행될 육군 노후 네트워크 사업 역시 비슷한 BMT 비용이 들 전망이다.
최근 통신업계의 신규 사업 발주가 현저하게 줄면서 BMT에 따른 업계 부담이 더 가중되고 있다. 대형 통신사는 자체 설비를 갖추고 있어 별도로 BMT 비용이 들지 않는다. 반면에 공공기관이나 일반기업은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같은 전문 기관의 공인된 BMT 성적을 요구한다.
BMT 비용은 사업 규모와 관계없이 장비 규모와 종류, 테스트 범위에 따라 결정된다. 장비 1개당 100만원에서 1000만원까지 천차만별이지만 모델이 여러 개면 수천만원이 드는 때도 많다. BMT 기관에 지불하는 순수 심사비용일 뿐 준비에 따른 인건비와 기타 비용 등을 고려하면 전체 비용은 더 올라간다.
더 큰 문제는 대부분 수요처에서 같은 장비라도 새로운 BMT 결과를 요구한다는 점이다. 업무 종류와 규모가 유사한 기업이라도 정보통신 환경과 요구 기능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데스크톱 PC처럼 보편적으로 쓰이는 장비를 제외한 주요 통신 장비 대부분이 BMT 대상이다.
한 통신장비 업체 사장은 “적잖은 돈을 들여 BMT를 실시하지만 수주에 실패하면 중소기업엔 타격이 매우 크다”며 “이런 비용 때문에 좋은 기술과 제품을 가지고도 사업체 참여 못하는 업체가 많다”고 말했다.
그는 심지어 BMT 실시 후 공급 업체로 선정됐는데 사업이 취소되는 사례도 있다고 털어놨다. 경영진에서 투자 규모 축소를 결정해 사업이 중단되면 공급 업체가 BMT에 투자한 돈과 시간,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업체는 ‘갑’인 발주사에 항의하기도 어려워 사업 재개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통신장비 업계는 BMT 실시의 가장 큰 목적은 성능 검증이지만 구매부서나 IT부서 담당자의 ‘보신주의’도 한몫한다고 지적했다. 향후 장비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회피를 위한 수단으로 BMT를 활용한다는 얘기다. 상당수 BMT가 이런 사례에 해당한다는 설명이다.
TTA에서는 업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기존에 테스트 받은 장비는 비용을 일정 부분 감액해준다. 하지만 BMT 실시 가이드라인 같은 근본적인 제도는 아직 없다. 과거 정부에서 공공기관 BMT 의무화를 고려할 때 비용 부분을 논의했지만 여러 기관의 이해관계가 얽혀 무산됐다.
한 장비업체 임원은 “예전엔 발주사에서 BMT 비용을 따로 책정했는데 지금은 제조사가 자기 돈으로 장비 성능검증까지 해서 제안하고 선택받지 못하면 그만”이라며 “최종 업체 선정 전까지 서류와 현장심사 등으로 최대한 업체를 거른 후 BMT를 실시하는 등의 상생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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