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낭소리` 원 기획사 문 닫게 만든 방송사 `갑의 횡포`

최근 방송 콘텐츠 제작사 사계절이 휴업에 들어갔다. 자금난에 허덕이다가 버티지 못한 결과다.

사계절은 ‘워낭소리’ 기획을 비롯해 ‘다시 보는 DMZ’와 ‘스틸 루트’처럼 작품성을 인정받은 다큐멘터리 제작 명가다. 업계를 대표하는 독립제작사협회 회장사기도 하다.

`워낭소리` 원 기획사 문 닫게 만든 방송사 `갑의 횡포`

사계절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나 교양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외주 제작사가 조용히 문을 닫고 있다. 수익성 악화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진다. 그 이면에는 지상파 방송사가 휘두르는 ‘갑의 횡포’가 숨어 있다.

사계절의 휴업은 최근 수년간 적자에 허덕이는 외주제작사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배대식 독립제작사협회 전략기획실장은 “업력 30년이 넘는 사계절은 상대적으로 경영 사정이 낫다고 알려진 기업이어서 업계에서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밝혔다. 배 실장은 “그나마 외부 투자가 이뤄지는 드라마를 제외한 제작사 대부분은 경영난에 시달린다”고 말했다.

방송통신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외주제작사 10곳 중 6곳은 적자를 기록했다. 손실률이 10% 넘는 비중도 20%를 웃돈다. 그나마 이는 드라마가 포함된 수치다. 다큐나 교양은 4~5년 전에 비해 평균제작비가 30%가량 줄면서 적자 경영이 심각하다. 제작비용은 늘어나지만 방송사는 단가 인상은커녕 기존 제작비마저 줄이는 실정이다. 제작비 사후 지급 관행은 외주 제작사를 더욱 경영난으로 내몬다.

배 실장은 “제작사는 방송 전 촬영에 소요되는 작가·PD·촬영·스태프 비용을 먼저 지급하지만 방송사는 방송이 나간 후 다음 주에나 대가를 지급한다”며 “결방이나 방송 지연이 되면 그 부담을 고스란히 제작사가 떠안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 제작사 대표는 “방송사가 제작을 의뢰해 촬영이 시작되고 첫 회가 방송된 후에 당초 얘기했던 제작비보다 적은 대가가 적힌 계약서를 들이대면서 사인을 요구한다”며 “울며 겨자 먹기로 계약하는 사례가 제작사를 빚더미로 몰고 간다”고 전했다. 그는 국내 방송의 표준제작비용이 마련돼 이를 준수한다면 여건이 개선될 것이라고 제시했다

드라마는 그나마 종합편성채널이나 IPTV 등 지상파를 대체할 채널이 있지만 다큐나 교양은 다르다. 시청률에 밀려 유료방송에서는 외면 받는 탓이다. 비드라마 제작은 소수자와 시청자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지상파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방송사가 창작에 대한 외주제작사 권리를 짓밟는 것도 문제다. 다른 제작사 대표는 “방송사가 제작비를 부담한다는 창작 권리인 저작권마저 인정하지 않고 있다”며 “작가나 배우에게 저작권을 인정해 재방영이나 해외 판매로 발생하는 수익을 분배받는 것과도 형평성이 어긋난다”고 지적했다.

이경민기자 km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