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시청 앞 분향소에서 가족들과 조문을 마치고 바로 옆에 비치되어 있는 노란 리본에 무언가를 써내리기 위해 간신히 생각해 낸 한마디였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사는 나름 건전한 사고와 건강한 생활을 하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월화수목금금금’ 쉼 없이 일하며 열심을 다해 온 사회 구성원의 한사람으로서, 뉴스만 봐도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속에 어찌 해야 할 바를 못 찾고 있다.
1970년대엔 쌀보리 혼식 점검을 받으며 점심 도시락을 먹었고,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한 시절에 초등학교를 다녔으며, 5·18, 6·10을 통해 민주화를 경험하고,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은 나라에서 아침에 출근할 직장이 있는 국민의 일원으로서 지난 1개월여 동안 겪은 대한민국은 마치 거대한 영화 세트장 같다. 겉으로 비치는 도시의 모습은 뉴욕, 런던, 파리를 능가할 정도로 화려하고 역동적이다. 하지만 문을 열고 들어간 입구 너머엔 내용물은 하나도 없는 부실한 골조와 곧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벽체뿐이다.
성수대교, 삼풍백화점을 비롯해 수많은 인재로 인한 사고를 겪은 지 20년이 지나고 21세기가 되었는데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똑같은 상황에 머물고 있는가? 50년간 1인당 GDP가 300배 성장하고, 교역규모가 2000배 늘었는데 지난 20년 동안 이러한 변화에 꿈쩍도 하지 않고 오히려 악화된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정치가 항상 문제인가? 아니면 문화라는 키워드로 포괄적으로 언급되는 우리의 관행과 사회환경 문제인가?
선박이 침몰하는 과정과 그 이후에 보인 우리의 시스템, 그 시스템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무지와 무능으로 인한 절망감은 과연 시스템을 바꿔서 개선이 될 수 있을 것인지 근본적인 의문을 갖게 만든다. 과연 시스템과 매뉴얼을 강화하고 사람을 바꾸고, 법제도를 개선하면 앞으로 사고를 막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러한 희망은 오히려 이번 사고를 너무 낙관적으로 해석하고 지금까지의 시스템과 조직에 대한 최소한의 믿음을 놓지 않는 접근이 아닐까 한다. 조직을 바꾸고, 법제도를 개선한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시스템으로 구축했더니 본래의 의도와 목적에서 벗어나 조직 스스로만을 위해 자가발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한순간에 사라졌다. 탈 것도 믿을 수 없고, 금융도 믿을 수 없고, 먹거리도 믿을 수 없고, 컴퓨터도 믿을 수 없다. 사회 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이번엔 반드시 원인을 찾아 해결하고 정비해야 한다.
그 시작점은 사실을 확인하는 것부터다. 급하게 결론부터 내서는 안 된다. 사고조사가 자가발전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시간이 필요하다. 이렇게 분통 터지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냉정함을 되찾아서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을 하고,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는지를 객관적으로 확인하고 바로 그 부분을 유발한 원인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 원인이 진정 무지와 무능에서 온 것인지, 조직의 관행과 타성에서 오는 것인지, 리더에게서 오는 것인지, 인간의 끝없는 욕심에서 오는 것인지, 생리적인 욕구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돈 때문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조직이 본래 존재 목적을 잊고 조직 자체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운영되었으니, 본래의 역할과 임무를 달성하기 위해 기본이 무엇이었는지 반드시 확인하고 이에 비춰 무엇이 뒤틀려 있는지 한 꺼풀 한 꺼풀 벗겨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과정 또한 모두가 신뢰할 수 있을 때 다시 믿음의 싹이 돋아날 수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본성에 대해 우리가 어떤 것들을 용인하고 수용하고 있는지 들여다봤으면 한다. 인간은 돌이나 개와 구분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생명체다. 사고의 진행상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복기하면서 그 급박한 상황에서 도와야 한다는 인간의 아름다운 본능에서 출발한 객실 승무원의 행동, 인간이기에 동승한 승객에게 손을 내미는 구원의 손길들, 친구에게 구명정을 양보하고, 제자를 구하러 다시 선실로 돌아간 선생님들의 뒷모습에서 시스템이 없이도 움직이는 거대한 신뢰와 배려와 자기실현의 성취를 봤다. 하지만 시스템과 조직 안에서는 정의도 없었고, 진실도 없었으며, 허위와 배신, 은폐가 난무한 인간의 추악한 본성의 배출만 있었음을 목도했다. 혹시 이 거대한 장편영화에서 나 또한 엑스트라의 한 명으로서 이러한 시스템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갑자기 몸서리가 쳐지고 머릿속이 하얗다. 나 또한 죄인이며, 잠재적 공범으로서 통렬한 자기반성이 있지 않고서는 그 무엇도 변화할 것 같지 않다. 내가 움직이지 않으면 변하는 것은 전혀 없을 테니까. 시청 앞 나뭇가지에 매달린 노란 리본에 적힌 한 문장이 떠오른다. “우리가 지켜온 헌법적 가치는 저런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잖아요?” 부끄러워서 얼굴을 못 들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는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일 터이다.
이경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 kevinlee@korea.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