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공사(KBS)와 문화방송(MBC)이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에 브라질 월드컵과 인천 아시안게임 재송신료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상파가 스포츠 이벤트 방송 프로그램에 따로 재전송료를 요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유료방송 업계는 이미 가입자당 재전송료(CPS) 계약을 한 상황에서 추가로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즉각 반발했다. 지상파와 유료방송 업계가 마찰을 빚으면 ‘월드컵 방송 블랙아웃(Black Out:방송중단)’이라는 최악의 상황도 우려된다.
25일 방송 업계에 따르면 KBS는 지난 22~23일 ‘KBS 2TV 재송신 관련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재송신 대가 협의 요청’ 제하의 공문을 주요 MSO에 차례로 발송했다. KBS가 제공하는 브라질 월드컵 관련 콘텐츠 대가를 양사가 협의하자는 것이 골자다.
MBC는 같은 기간 브라질 월드컵과 함께 인천 아시안게임 재전송료도 함께 협의하자는 공문을 각 MSO에 전달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자신문이 입수한 해당 문건에 따르면 KBS는 “재송신 계약 관계에 기반을 두고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재송신 대가 협의를 요청한다”고 명시했다. MBC는 KBS보다 강도를 높여 “양사가 체결한 재송신 계약 제6조 1항은 국민관심행사 중계방송의 재송신 관련 대가를 별도 협의해 정하도록 규정했다”며 “지상파 채널 사용료에 관한 별도 협의를 요청한다”고 강조했다.
유료방송업계는 지상파 3사와 이미 CPS 계약을 한 만큼 지상파의 일방적 월드컵·아시안게임 재전송료 부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주장이다.
유료방송업계 한 관계자는 “CPS 계약을 한 시점부터 유료방송사업자는 이미 지상파 3사의 채널 사용권을 확보한 것”이라며 “지상파가 근거로 제시한 재송신 계약 제6조 1항도 일방적 해석에 불과하며 추가 콘텐츠 비용을 지불한다는 내용은 계약서 어디에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에 대해 KBS 협상 담당자는 전화 통화에서 “브라질 월드컵 재전송료에 관해 할 말이 없다”며 모든 질문에 답변을 거부했다.
업계는 월드컵 재전송료를 둘러싼 지상파와 유료방송업계의 갈등이 지속되면 또다시 ‘블랙아웃’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케이블TV 업계는 지상파가 제시한 재전송료 기준에 반발해 KBS2 채널 송출을 중단한 바 있다.
케이블TV 관계자는 “월드컵이나 아시안게임마다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면 결국 유료방송 요금이 올라가 모든 피해는 시청자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보편적 시청권을 확보해야 하는 공영방송이 국민적 관심사가 쏠리는 스포츠 이벤트로 수익 사업을 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해설
KBS와 MBC가 유료방송사업자에 브라질 월드컵과 인천 아시안게임 재송신료를 요구하는 것은 광고 수주 부진과 시청률 하락에 따른 경영 위기를 탈피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업계에 따르면 지상파는 세월호 참사로 광고 수주량이 크게 하락하면서 최소 100억원에 달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국민적 애도 분위기가 지속되면서 광고가 크게 줄었다”며 “세월호 참사 관련 정권 편향적 보도와 오보 의혹이 제기된 지상파를 꺼리는 광고주도 있다”고 전했다.
업계 일각에서는 지상파의 이번 재송신료 요구가 올 연말 진행할 예정인 CPS 협상을 위한 포석이라는 시각도 있다. 지상파가 월드컵, 올림픽, 아시안게임 등 모든 대형 스포츠 콘텐츠를 추가 비용 없이 유료방송사업자에 제공하는 대가로 CPS를 올리는 제안을 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케이블TV 관계자는 “현재 CPS 280원은 명확한 기준 없이 지상파가 일방적으로 산정한 금액”이라며 “양 업계가 납득할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방송법이 규정한 ‘보편적 시청권’을 중심으로 양 업계의 갈등은 한층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방송법에 따르면 보편적 시청권은 국민적 관심이 큰 체육경기대회 등을 일반 국민이 시청할 수 있는 권리다. 방송법 제76조 3 제1항은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 중계방송권을 다른 방송사업자에게 공정하고 합리적 가격으로 차별 없이 제공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시행령에 따르면 월드컵은 국민 전체가구 수 가운데 90%가 시청 할 수 있는 방송수단을 확보해야 한다. 직접 수신율이 8%에 불과한 지상파는 보편적 시청권을 구현하기 위해 유료방송사업자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업계 한 관계자는 “국민의 보편적 시청권을 보장하기 위해 제공하는 월드컵 콘텐츠를 볼모로 유료방송사업자에 또다시 재송신료를 요구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윤희석기자 pioneer@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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