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 준비생들이 충격에 빠졌다. 대통령이 이른바 관피아(관료+마피아)를 척결하려고 고시 선발 비중 축소를 밝힌 다음이다. 바늘구멍만한 문이 더 좁아진 것에 대한 고시생 불만을 대변할 생각은 없다. 다만 다른 차원에서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고시는 우리 사회에서 사회이동의 상징이기 때문이다.
사회이동(social mobility)은 계층 간 상하 이동을 뜻하는 사회학 용어다. 하류층과 중류층이 각각 위로 올라가거나 상류층과 중류층이 각각 아래로 내려간다. 여기에 막힘이 없어야 ‘열린사회’다. 태어나면서 주어진 신분이 아니라 능력과 업적에 따라 지위가 결정되는 사회다. 지금도 일부 남았다는 인도 카스트제도는 그 반대 사례다. 카스트제도가 아무리 계급간 영역 보호라는 긍정적 측면이 있다 해도 사회이동 자체를 막는 사회를 결코 바람직하다고 할 수 없다.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 아주 짧은 기간에 역동적으로 경제와 민주 발전을 이뤘다. 활발한 사회이동 덕분이다. 특히 교육을 통한 사회이동이 결정적이다. 보잘것없는 집안에서 태어나도 공부를 잘해 서울대를 가고, 고시에 합격한 사람이 있었다. 우리는 이들을 ‘개천에서 나온 용’이라고 불렀다. 공부 아닌 사업으로 용이 된 이는 더 많았다. 자수성가형 사업가들이다.
어느 순간 이 용들이 사라졌다. 재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명문대 진학도 거의 힘든 시절이 됐다. 두뇌와 상관없이 학원 과외비를 감당할 수 없는 탓이다. 고등학교만 나와 사업을 해도 부모 세대엔 적었던 학맥, 인맥 장벽에 부닥쳐 과거와 같은 성공을 기대하기 힘들다.
고시는 다르다. 예나 지금이나 출신, 학력과 상관없이 공평한 기회를 준다. 정부가 고시 폐지 수순을 밟는다. 외무고시에 이어 사법고시를 2017년 폐지한다. 행정고시 비중을 절반으로 뚝 낮춘다.
물론 고시 합격으로 팔자를 고치던 시절은 지났다. 요즘 고시 합격자도 대부분 특성화고, 명문대 출신 중·상류층 자녀가 차지한다. 명문대 진학도 힘든 하류층에게 ‘그림 속 떡’이다. 그렇다고 아예 쳐다보지도 말라는 것은 너무 가혹한 일이다.
행시 축소와 민간 경력 채용 확대를 두고 ‘음서제 부활’이라는 비아냥거림이 나왔다. 고려와 조선 시대 귀족이나 양반 자제를 시험 없이 관료로 채용한 제도다. 관직 세습 폐해가 심해 과거제도로 바꿨다. 고시는 과거제 연장선에 있다. 더 엄격하다. 이 고시를 폐지하고 축소한다고 하니 음서제 부활 얘기가 당연히 나온다. 사시와 외시를 대신한 로스쿨, 외교아카데미만 해도 더 좋은 교육 기회가 주어진 상류층 자녀에게 아무래도 유리한 통로다.
백번 양보해 이들이 도덕성, 정의감과 같은 공직 윤리관이 월등하다면 모르겠다. 회의적이다. 평균을 훨씬 밑도는 상류층 자녀 군복무 비율만 봐도 그렇다.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더 빠진 집단에서 공직 기회가 더 생기면 ‘정의’라는 사회적 가치는 훼손된다. 자칫 사회 불만으로 번질 수 있다.
‘관피아’를 도려내야 한다. 그런데 관피아는 고시 때문이 아니라 공직사회 일부에 만연한 학연, 지연, 이해관계로 얽힌 ‘끼리끼리’ 문화의 산물이다. 이 구조적 병폐를 놔두고 그 출입구만 바꿔 단다고 그 안의 관피아를 없앨 수 있을까. 난센스다. 정작 척결 주체야말로 관피아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민주사회에서 자라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비리를 멀리하는 관료도 중앙부처에 꽤 많다. 잘못 꿴 단추가 이들까지 싸잡아 매도하는 분위기를 해소하기는커녕 더 부채질할까 걱정된다. ‘소 잃고 외양간을 부순다’는 한 네티즌 댓글이 자꾸 뇌에 맴돈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