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일이다. 중국 BOE가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들로부터 차세대 LCD 공정과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을 빼돌리다 적발됐다. 2012년 1심 재판에서 BOE 직원과 국내 관계자들은 실형을 받았다. 하지만 입건된 BOE 법인은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중국과의 관계를 염두에 둔 국내 기업들이 먼저 ‘BOE를 처벌하지 말아달라’는 탄원서를 냈다. 도둑맞은 기업이 도둑을 처벌하지 말라고 하니 검찰도 이를 감안한 듯하다.
이것이 기술 유출과 관련된 우리의 현주소가 아닐까 한다. 기술 자체가 넘어가느냐 마느냐보다 기업의 결정권이 더 중요해 보인다.
개인이든 기업이든 핵심 기술을 몰래 넘기다 걸리면 수사기관들은 수백억원 때로는 수조원에 달하는 국가적인 피해를 막았다며 호들갑을 떤다. 피해 규모를 산업 전체로 계산하는 어이없는 산정 방식 때문에 수사기관들의 노고를 폄하해서는 안 될 터이니 요점만을 보자면, 그만큼 ‘기술 유출’을 바라보는 정부나 언론의 시각은 엄중하다. 단순히 그 기술을 소유한 기업의 재산을 도둑맞았다는 시각 정도로 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당사자 즉 기술을 소유한 기업의 결정에 따라 이 중차대한 일에 대한 국가의 결정권은 지극히 유동적이 되고 만다.
최근 가동을 시작한 국내 기업의 중국 현지 반도체 공장을 바라보는 시각도 여러 갈래다. 기술 유출에 대해 국가 지원이 들어가지도 않은 기술이라 정부는 신고를 수리할 뿐이었다. 전문가들의 심사가 있었지만 정부의 역할은 너무 작았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기업이 결정하면 정부가 지연은 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완전히 막기 힘든 것이 현실이다.
기술 유출에 대해 우리의 잣대는 너무 다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개인이 저지른 기술 유출은 대역죄가 된다. 물론 사익을 위해 기업이나 동료들의 안위를 헌신짝처럼 버린 이들을 비호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국내 기업의 현지 반도체 공장은 그런 서막에 불과할 지도 모른다. 시장을 쫓아야 한다는 논리대로라면 언젠가는 우리의 제조업 기반이 송두리째 해외로 옮겨질 지도 모른다. 이제는 그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심도 깊은 논의를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문보경기자 okmun@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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