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인간과 공감하는 ‘따뜻한(Warm) ICT’

[미래포럼]인간과 공감하는 ‘따뜻한(Warm) ICT’

지난 2월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전 세계 정보통신 관련자 7만5000여명이 참석한 모바일 월드 콩그레스(MWC) 2014를 참관할 기회가 있었다. 그곳에는 지난 5년여간 숨 막히게 전개돼온 삼성과 애플의 스마트폰 전쟁은 더 이상 없었다. 이미 스마트폰 시장에는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고 글로벌 선도기업들조차 미래에 대한 짙은 고민을 감추지 않았다.

행사의 캐치프레이즈 ‘Creating What’s Next’에서 볼 수 있듯이 모든 ICT 기업인은 이제 모바일 산업의 다음 먹거리는 무엇일지에 골몰하는 모습이었다.

TV, VCR, 인터넷, 모바일폰으로 이어져온 ICT 산업의 성공 계보가 한계에 도달한 것 같다. 여전히 빅데이터, IoT, 웨어러블 디바이스, 의료 융합 등 다음 세대 키워드가 제각기 제시되고 있지만 시대를 관통하고 우리나라의 미래를 수놓을 무지개는 보이지 않는다.

인터넷으로 촉발된 전 세계적인 무한경쟁은 앞으로 글로벌 넘버원 제품이 아니면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무엇으로 우리나라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까? 다음 세대를 이끌어갈 만하고 산업적, 문화적 국제 리더십을 담보할 만한 새로운 주력 기술, 주력 산업이 필요하다. 창의적이고 진취적인 새로운 것이 필요하다.

최근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면서 과학기술 대국을 꿈꾸는 우리 기술자들로서 자긍심보다는 자괴감이 크다. 첨단기술이 날마다 개발되고 아름다운 장밋빛 미래에 대한 그림들이 다채롭게 제시되고, 우수한 ICT 제품 수출로 세계적인 정보통신강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지금까지의 ICT 산업은 세계 최고, 최초만을 추구하는 무한경쟁이 지배했다. 다양한 기술이 개발되면서 사람들의 욕구는 한층 높아지게 되고 기술 발달은 현실 세계와는 또 다른 가상 세계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제는 현실세계와 가상세계가 공존하는 혼합세계로까지 발전하고 있다. 정보통신기기의 모습도 TV, VCR 등과 같이 사람과 떨어진 형태로 사용되다가 이어폰, 스마트폰 등과 같이 점점 사람과 밀착되면서 휴대가 기본이 되고 있다. 더 나아가 미래에는 웨어러블 디바이스, 인체 내장형 의료기기 등과 같이 사람 몸에 부착되거나 삽입되는 형태로 진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융합 ICT를 기반으로 전통산업과 기술 협업을 함으로써 새로운 가치가 추가된 신산업으로 변모할 것이며, 나아가 미래 사회 인프라를 개선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미래의 ICT 제품은 더 이상 편리성과 첨단성이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 사람의 생각과 습성, 인간의 생활 형태와 추구하는 가치를 반영해 인간 관점에서 재해석돼야 한다. 인간에게 도움이 되고 인간의 생활과 형태가 반영되지 않으면 미래에는 크나큰 위험이 대두될 수밖에 없다. 휴대기기의 프라이버시 노출 문제, 인체 삽입형 의료기기의 수명 문제 그리고 전자파에 의한 ICT 기반 웨어러블 디바이스의 오작동 등 많은 문제가 드러날 수 있다.

종래의 ICT 산업이 첨단기술을 존중하고 기술의 우위에 기반을 둔 기술 위주의 차가운 ICT가 지향점이었다면 앞으로의 사회에서는 인간 중심의 따뜻한 ICT로의 변화가 필요하다. 차가운(Cool) ICT에서 따뜻한(Warm) ICT로의 전환을 말한다. 이는 인간의 행복과 사회문제 해결이 목적이 되는 ICT와 산업으로의 패러다임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21세기는 비록 기술이 기반이 되는 지식사회지만, ICT와 산업에서는 인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

이제 기술 기반 ICT에서 인간 위주의 ICT로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다. 따뜻한 ICT는 먼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세상을 지향한다. 기술의 완성도보다는 기술의 수준은 조금 떨어질지 모르지만 목적에 맞는 적정기술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올리버 삭스 미국 MIT 교수가 “기술이 인간성을 말살하기 이전에 기술에 인간성을 입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것처럼 일류기술의 개발도 중요하지만 목적에 맞고 사회문제 해결이 가능하다면 로테크 기술도 중요하게 통합할 수 있는 시스템적인 사고로의 전환도 요구된다.

우리는 미국의 실리콘밸리를 부러워한다. 겉으로 보기에 실리콘밸리는 대표적인 벤처 성공의 요람이지만, 정작 성공한 기업은 빙산의 일각이며 실패자의 도시라고도 볼 수 있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외양만을 배우려 하지 말고, ICT 개발 투자에서 실패도 성공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자양분이라는 인식을 배워야 한다. 더불어 보기에는 작은 열매지만 소중한 생명력은 자란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또 미래 시장경쟁력의 요소로는 종합적인 기술 우위보다도 특화된 기능의 차별화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범국가적으로 단기적인 성과와 효율에 집중하기보다는 인간이 좋아하고 필요한 기술, 공존하고 공감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우선시하는 철학적 변화가 필요하다.

전 세계 ICT 선진국은 미래 기술 리더십 확보를 위해 새로운 패러다임 변화를 찾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 오픈소스 플랫폼의 확산과 3D 프린팅 기술의 접목을 꼽을 수 있다.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ICT 제품과 서비스의 개발이 가능한 창작 생태계를 활성화하자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개최된 ‘메이커 페어(MakerFaire Bay Area) 2014’ 행사는 참가자가 12만명에 달하고, 이 중의 90% 이상이 가족과 함께 참여했다는 특징을 보이고 있다. 참여 규모 면에서 이미 CES를 능가하는 수치다. 이미 미국에서는 누구나 창의적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제품 구현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인식의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좋은 증거다. 이미 인간과 공감하는 패러다임 변화는 시작되고 있다. 다가오는 21세기의 국가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 수 있는 ICT로의 패러다임 변화, 바로 따뜻한 ICT가 그 해답이다.

손승원 ETRI 창의미래연구소장 swsohn@etri.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