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즘]정쟁수단

[프리즘]정쟁수단

정쟁(政爭)이 정치권만의 용어일까. 요즘은 정치권이 아닌 일반 기업에서도 정쟁을 종종 목격하곤 한다. 정쟁에는 반드시 싸움의 빌미가 되는 도구가 있다. 이름하여 정쟁 수단이다. 정쟁의 수단은 정작 본질과 상관없이 정쟁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고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돼 일을 종종 그르치기도 한다.

국민은행을 예로 들어보자.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이건호 국민은행장이 주도권을 놓고 정쟁을 벌이는 바람에 메인프레임을 개방형 유닉스시스템으로 다운사이징하는 차세대 전산시스템 구축 프로젝트가 정쟁 수단화됐다. O과 1로 대변되는 디지털화를 통해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하는 IT사업의 의미는 대부분 단순하다.

다운사이징은 폐쇄성과 종속성 문제를 탈피하기 위해 지난 2000년대 중반부터 금융권은 물론이고 대부분 산업에서 이뤄진 정보화 사업이다. 메인프레임은 속성상 다른 회사의 제품을 연동하기 어려워 같은 회사 제품의 하드웨어(HW)와 소프트웨어(SW)만을 적용한다. 특정 기업에 종속되다 보니 높은 유지비용 문제를 야기한다.

기업들은 개방형인 유닉스 시스템으로 전환하는 사업을 추진했다. 외환·신한·하나·기업·농협은행이 유닉스 전환을 완료했다. 과거 메인프레임 시장에서 선전했던 한국유니시스가 국내시장에서 철수한 배경이다. 국민은행이 다운사이징을 검토한 것은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2005년부터 검토, 10년 동안 논의했다. 최근 2년 동안 유닉스 벤치마크테스트(BMT)도 진행했다. 오랜 기간 준비 끝에 사업이 시작되는 순간, 갑작스럽게 정쟁수단으로 전락한 것이다.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 기업은 대부분 첨단 금융 IT를 구현, 세계적으로 높은 수준의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실시간 금융 거래가 이뤄지는 나라는 매우 드물다. 그럼에도 여전히 금융 IT가 정쟁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그런 국민은행의 IT사업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과연 국민은행이 ‘리딩 뱅크’답게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 낼 수 있을까.

신혜권기자 hk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