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일러스는 포터블 게임기나 스마트폰의 터치 스크린 인터페이스를 조작하는 연필형 입력 장치를 말한다. 스타일러스라는 말은 말뚝, 쐐기라는 의미의 그리스어 ‘스틸로스(στ〃λο〃)’에서 왔다는 설과 표식이라는 의미의 ‘스티조(στ〃ζω)’에서 왔다는 설이 있는데 이 두 가지 어원을 종합하면 표식을 하는 쐐기 모양의 도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고대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4000년 전부터 점토판에 그림문자로 기록을 하기 시작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점토판에 표식을 하기 위해 사용한 갈대 줄기의 필기 도구를 스타일러스라고 한다.
수메르인들은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이런 스타일러스를 이용해 점토판에 본격적으로 기록을 하기 시작했는 데 스타일러스를 활용해 점토판에 새겨진 모양이 쐐기 같다고 해서 그런 문자를 ‘쐐기 설’자를 써서 설형(楔形)문자라 부르게 된 것이다.
소재는 갈대 줄기에서 나무로 바뀌기는 했지만 도구의 구조는 동일했다. 아랫 부분은 표식이 용이하도록 가늘었고 머리 부분은 잘못된 표식을 문질러 지울 수 있도록 납작했다.
새기는 부분과 지우는 부분으로 구성되는 스타일러스의 이런 구조는 16세기 이후 서구에서 보편화된 연필, 특히 흑연 연필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가 쓰는 연필은 1858년 미국의 하이멘 리프만이 머리 부분에 지우개 고무를 단 연필을 특허내면서 시작됐다. 고대 갈대 스타일러스와 연필에서 보듯 한 쪽으로는 쓰고 다른 쪽으로는 지우는 두 가지 기능의 결합이 입력 인터페이스의 보편적 속성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논리를 좀 비약하면 대표적인 입력 장치인 컴퓨터 키보드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데 여기서 삭제 키와 백스페이스 키는 연필의 고무 지우개에 해당하는 셈이다.
스타일러스는 1877년 에디슨이 축음기를 발명하면서 사용됐다. 그의 축음기는 회전하는 원통형 디스크에 돼지털로 된 스타일러스를 이용해 소리의 파형을 기록했다. 소리의 파형은 그림으로 표시됐는 데 이는 쐐기 모양의 그림으로 정보를 새긴 고대 수메르인들의 기록 방식과 절묘한 공명을 보여준다. 기록은 말이든 소리든 그림으로 시작된 것이다.
스타일러스는 현대적인 컴퓨터 입력 도구로 보편화되고 있다. PDA를 필두로 닌텐도DS와 같은 포터블 게임기, 그리고 스마트폰과 같은 휴대전화는 스타일러스를 지원한다. 디지털 펜이라 불리는 스타일러스 입력 방식은 정전식과 감압식이 있다. 요즘의 터치 스크린은 정전 감응(capacitive sensing) 방식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스타일러스를 이용할 경우, 손가락을 이용할 경우보다 오류를 줄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키보드와 비교해 보다 자유롭게 입력할 수 있다. 이를 ‘육화 매핑(embodied mapping)’이라 부르는데 마우스와 마찬가지로 육체적인 움직임을 그대로 화면에 구현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그림도 그리고 필기체로 문자를 입력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림 그리기가 그런 것처럼 아날로그적인 육체의 움직임이나 소리를 그림 형태로 그려낼 수 있다는 점은 상호작용 인터페이스의 유연함을 의미한다. 아날로그 기록 방식의 이런 유연함이 시간을 가로질러 공명하면서 디지털 시대에도 구현되기에 이른 것이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