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쏙 드는 게 없다. 성능과 기능이 마음에 들면 디자인이 영 아니다. 이런 소비자 불만이 앞으로 줄어든다. 맞춤생산 시대가 열렸기 때문이다. 그것도 대량 맞춤생산이다.
대량생산(mass production)과 맞춤(customization)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소비자마다 다른 요구를 다 맞춰가며 값싼 제품을 만들 수 없다. 한 생산라인에서 더 다양한 모델을 만드는 ‘다품종 소량생산’이 양산의 대안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완전한 맞춤생산은 아니다. ‘매스커스터마이제이션’ 구호는 80년대 후반 등장 이후 늘 꿈이었다. 요즘 현실로 성큼 다가왔다.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 덕분이다. 인터넷이 모바일까지 확산돼 고객 개별 요구를 기업에 실시간 전달할 통로가 생겼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심지어 개인 스스로 모르는 취향까지 알아낸다. ICT 기반 생산시스템은 한층 고도화하고 유연해졌다. 운동화, 의류, 식품, 의료기기, 심지어 전자제품과 무기까지 척척 만들어내는 3D프린팅 기술은 이를 더욱 재촉한다.
리복, 나이키는 인터넷에 접속한 일부 소비자 요구에 맞춘 ‘나만의 운동화’를 만들어 판다. 뉴발란스는 더 나아갔다. 100% 대량 맞춤생산을 선언했다. 디자이너가 몇 달 걸릴 일을 몇 시간 만에 해내는 3D프린팅 덕분에 가능한 시도다.
‘오픈소스하드웨어’가 붐이다. 제품 설계, 디자인과 같은 기밀을 공개해 누구나 하드웨어를 만든다는 개념이다. 생산 주체도 바꿔놓는다. 꼭 제조 설비를 갖춘 공장이 없어도 3D프린터만 있으면 누구나 원하는 제품을 직접 만든다.
오픈소스하드웨어가 확산되면 자가 생산이 쉽도록 표준화한 모듈부품 수요가 는다. 부품 업체는 당연히 이 흐름을 좇아간다. 양산기업의 전통적 공급망관리(SCM)에 균열이 생긴다. 인텔과 같은 칩 제조업체가 최근 오픈소스하드웨어에 공을 들이는 것에 다 이유가 있다.
매스커스터마이제이션과 오픈소스하드웨어가 당장 양산체제를 대체할 수 없다. 양산만큼 효율적인 생산체제는 아직 아니다. 하지만 기존 양산체제를 흔들기에 충분하다. 고객 개성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는 양산기업이라면 도태 위기까지 내몬다. 글로벌 양산기업도 이를 느끼기 시작했다. 노키아는 스마트폰 케이스 디자인을 공개해 고객 요구대로 만들어주거나 고객이 3D 프린터로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했다.
양산기업도 그간 고객 요구를 수용하려 애를 썼다. 하지만 방법은 늘 추측이다. 각종 소비자조사로 이런저런 요구를 가정하고 생산 자원을 동원한다. 예측이 어긋나면 엄청난 실패를 본다. 성공 일부도 엉뚱한 곳에서 나온다. 고객 요구를 그대로 반영한 맞춤생산은 추측의 위험성에서 자유롭다.
맞춤생산은 유통업체도 위험에 빠뜨린다. 양산기업과 소비자 사이 길목을 차지해 통행세를 거둔 유통업체다. 누구나 원하는 대로 만들고 직접 거래한다면 유통업체가 낄 자리는 없어진다.
오리지널스티치는 샌프란시스코 의류업체다. 최근 남성용 셔츠에 대한 대량 맞춤생산 온라인 플랫폼을 열었다. 고객이 원하는 셔츠를 고르면, 일본에서 전량 생산해 세계 어느 곳에나 2주 안에 보낸다. 이 과정에 물류업체는 있어도 유통업체는 없다.
스테이플스는 미국 사무용품 유통업체다. 최근 뉴욕, LA 매장에 3D 프린팅 기기를 들여놨다. 온라인으로 신청한 고객이 원한 그대로 만들어 준다. 맞춤생산이 가져올 유통혁명에 적응하려는 시도다.
우리나라 제조업체는 양산기술만 강하다. 유통업체는 물 밖을 나서면 ‘듣보잡’인 ‘우물 안 개구리’다. 맞춤생산이 확산되면 우리 제조, 유통업체가 감당할 충격이 외국 업체보다 훨씬 크다. 고객과 실시간 소통하는 플랫폼, 유연한 생산체제를 갖추지 못한 탓이다. 위기의식조차 없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비롯한 위기는 정말 위험하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