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초기 창업자를 위한 손톱밑 가시뽑기](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14/06/10/article_10170327044038.gif)
‘결과가 과정을 추론한다’ ‘형식이 내용을 규정한다’
얼마 전 예비 창업자들이 회사를 방문했을 때 벤처사업을 하면서 가장 염두에 둬야 할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내놓은 답변이다. 수많은 말들이 있겠으나 드라마틱한 과정을 통해 위대한 결과를 꿈꾸는 일이 항상 바람직하지는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보기 좋은 떡’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형식’을 중요시하라는 말도 덧붙였다.
왜냐하면, 외모지상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자아도취에 빠져 남들이 몰라주는 내면의 세계를 혹여 ‘기술’이라는 명목으로 고집부리는 일이 없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그들을 보고 있노라면 사업을 14년째 하고 있는 입장에서 미안한 마음과 체하는 듯한 답답함이 몰려든다. 그동안 IT업계가 해외 선진국의 모습을 닮기까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 반성과, 이들이 헤쳐가야 하는 험난한 여정이 눈앞에 보이기 때문이다.
예비 창업자들의 똘망똘망한 눈빛과 반듯하게 허리를 세워 올바르게 앉아 있는 모습에 슬프고 무서운 얘기만 할 수는 없었으나 한국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회사로 살아남기 위해 겪어야 하는 일들의 아주 작은 부분만을 전달했다.
당신들이 겪어야 하는 일들 중에 머리채를 휘어잡는 섬뜩함을 느끼게 하는 자금 압박 이외에도 학생 때는 겪지 못하는 비상식적인 일들이 매우 상식적으로 보이는 사람들에 의해서 자행이 되고 그것이 운 좋게도 내편이면 다행이고, 그렇지 않으면 해결되기 불가한 수준의 장애물이 될 것이고, 이 때문에 순식간에 수억에서 수백억원 채무자가 된 대표이사만 남긴 채 회사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말이다.
벤처라는 과실나무가 잘 자라기 위한 ‘환경’이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떤가?
‘쓸데없는 규제는 쳐부술 원수’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
올해 3월 대통령이 직접 표현한 규제 혁파에 대한 의지가 담긴 문구다.
‘손톱 밑 가시 뽑기’. 손톱 밑에 날카로운 것에 자극을 받을 때의 통증에 대한 기억으로 이처럼 좋은 표현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매번 들게 된다.
초기 벤처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 인력·자금·기술 3대 요소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여기에 ‘환경’이라는 것을 덧붙이고 싶다. ‘환경’에는 시장·제도·규제·인식 등의 내용을 포함돼 있다.
IT 전체 시장 중 공공부문 발주량은 33% 정도고, 전 세계 어느 나라건 개발도상국 이상의 나라는 비슷하다. 모든 씨앗에서 새싹이 나는 원리와 동일하게 이 공공부문을 토대로 기업들이 체력을 키우고 체계를 갖춰 세계 시장에 진출할 수 있는 경쟁력을 확보하게 된다. 소프트웨어 선진국이라 할 수 있는 나라들의 자국 제품 보호 정책과 맞물려 매우 적극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아마존, 오라클 등 초대형 IT회사들의 제품도 미국 정부는 균등한 기회를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사용하고 있는 예를 흔하게 찾아 볼 수 있다.
우리 정부의 R&D 지원 자금 규모가 이스라엘을 넘어서 전 세계 1위가 됐다.
정부 지원자금의 규모를 어느 정도 늘려주면 도움이 되겠냐는 질문에 ‘지원자금은 어차피 뷰티콘테스트일 수 있어서 초기 벤처기업은 혜택을 받을 수 없으니 정부 공공기관에 납품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적극적으로 국산 제품을 구매해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은 방안’이라고 답변을 했다가 생뚱맞게 R&D 관련 기관에서 질타를 받은 적이 있다.
지원자금 규모도 중요하지만 정부가 구매해주는 것이 훨씬 더 시장에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고, 시장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더 급선무라는 것을 전하고 싶었던 것이다. R&D자금으로만 생계가 유지되는 회사가 많다는 것은 공공연연한 비밀이다. 이런 발언에 불편해 하는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지만 IT 후배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지극히 작은 십자가라도 져볼 요량이다.
초기 창업자나 벤처기업에 대한 ‘가시’에 대한 예를 하나 들어보자.
연초에 다급하게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을 찾은 일이 있었다. 어느 날 몇몇 고객으로부터 약속이나 한듯 CC인증을 약속한 시간에 제출하지 않으면 A사 제품으로 교체 납품하라고 통보가 날아왔다. A사는 우리나라 최대 통신사를 4번 정도 사고도 남는 시가총액을 가진 대형 외국 회사다.
이어 같은 날 기관으로부터 데스크톱 가상화에 대한 카테고리가 없으니 CC인증을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왜 이런 일련 일들이 이토록 톱니바퀴처럼 일사불란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
이 시점은 우리회사가 CC인증 신청한 지 1년 4개월 되는 시점이고, 현재는 1년 6개월을 넘어섰다.
CC(국제공통평가기준)은 1996년에 국가마다 상이한 평가기준을 연동하기 위해 제정됐고 2006년 우리나라는 국제상호인정협정에 가입했다. 또 IT보안인증사무국은 2009년 6월부터 공공기관은 CC인증획득 정보보호 제품을 도입하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한다고 공표했다. 이 인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최소 인력 2명 이상, 기천만원 이상의 비용이 들게 돼 초기 벤처기업에는 매우 넘기 힘든 벽이 됐다.
국책기관(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의 도움으로 CC인증을 다시 재개할 수 있어 천만 다행이었으나 앞으로의 여정도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비슷한 기존 제품은 인증을 받았으나 갑작스럽게 어울리지 않는 카테고리 유무를 들어 중단을 통보해온 이유와 ‘아쉬우면 해외 가서 CC인증을 받고 와라’고 씁쓸한 충고를 해준 일을 돌이켜 보면 말이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국내 CC인증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이것이 오히려 국내 소프트웨어업계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살펴 봐야 한다.
‘소프트웨어진흥법’을 열 개 만들면 무슨 소용인가?
그 어마어마한 문서작업과 큰 비용 없이는 언감생심 CC인증을 쳐다 볼 수도 없고, 공공기관에 납품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을.
대통령이 말한 쳐부숴야 할 원수나 제거해야 할 암덩어리 혹은 큰 가시가 아닐지 돌이켜 보기를 희망한다. 제도 자체에 대해서만 검토하자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운영하는 측면도 포함해야 한다. ‘아는 사람’을 통해 얼마든지 특정 회사의 CC인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겪고 보니 더욱 그러하다.
한때 국산 자동차, 휴대폰, 각종 공산품 어느 하나 외제를 선호하지 않은 것이 없을 때가 있었다. 물론 제품 자체의 품질 향상도 큰 몫을 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자국 산업 보호의 정책 역시 주요한 성장 요소가 되었음을 상기할 수 있다.
‘어떤 일을 기획하든 아름다운 결과를 설정하고 과정을 설계를 하십시오. 그렇게 되면 과정의 험난함도 좋은 추억거리가 됩니다’라고, 추상적인 조언을 해줬지만 이들이 겪어내야 할 상당수 공공기관의 외산제품 선호 양상을 어떻게 이겨내고 성장해 나갈지 기대 반 걱정 반의 시선으로 방문을 마무리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일, 잘할 수 있는 일에 몰두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닐까. 날려고 하는 자마다 족쇄를 매달지 말고, 풀어줘야 하지 않겠는가?
최백준 틸론 대표 kjun@tilo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