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유소파업 본질은 밥그릇 싸움...애꿎은 소비자만 불편

주유소 업계와 정부의 ‘석유제품 거래상황기록부 주간보고제도’ 도입을 둘러싼 갈등이 ‘동맹휴업’과 ‘법적 처벌’이라는 극단적 대립으로 비화됐다. 주유소가 문을 닫으면 애꿎은 소비자 불편이 예상된다. 주유소 업계는 한국주유소협회를 중심으로 정부의 거래상황기록부 주간보고제도 도입에 반발해 3029개 주유소가 참여하는 동맹휴업을 12일 실시할 것을 결의했다. 이에 정부는 동맹휴업을 불법 행위로 규정해 강경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주유소협회는 2차 휴업까지 추진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 회원들이 지난 9일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래상황기록부 주간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한국주유소협회 회원들이 지난 9일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거래상황기록부 주간보고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다음달부터 주간보고제가 시행되면 각 주유소는 석유제품 입고·출하·재고량 등을 매주 석유관리원에 보고해야 한다. 지금까지는 각 점포가 1개월 단위로 주유소협회에 보고했다. 주유소 업계는 주간보고 때문에 경영난으로 문 닫는 점포가 늘고 있는 상황에 업무량까지 늘어 인건비 등 부담이 가중된다고 주장한다. 보고 과정에서 실수로 물게 될 과태료와 전산보고에 필요한 단말기 관리비용도 사업자 부담이라는 입장이다.

정부는 가짜석유 유통과 탈세를 근절하기 위한 정책이기 때문에 한발도 물러날 수 없다는 뜻을 밝혔다. 주유소업계가 제도 도입 철회에서 2년 유예로 협상안을 제시했지만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필요한 정책을 업계가 단체행동으로 막으려는 것은 잘못된 일”이라며 “주유소 파업은 국민 생활을 볼모로 하는 행위”라고 언급하며 정부의 강경한 입장을 재확인시켰다. 주유소업계는 ‘생존권을 위한 선택’이라고 주장하지만 동맹휴업을 실제 시행하면 소비자를 볼모로 한 집단행동에 나섰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석유업계는 이번 대립이 무리하게 석유시장 개입 정책을 고수하는 정부와 존폐 위기에 처한 주유소협회의 밥그릇 지키기에 소비자만 불편을 겪게 된 것이라고 평가한다. 주유소 업계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원인은 정부가 제공했다. 정부가 지난 1995년 주유소 거리제한을 폐지한 후 국내 주유소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해 포화 수준인 8000개를 훌쩍 넘어 1만 3000개까지 늘었다.

정부는 또 지난 2011년 ‘기름값 잡기’ 일환으로 알뜰주유소를 도입해 주유소 간 경쟁을 더욱 치열하게 만들었다. 각종 세제 지원으로 3년 만에 1038개까지 알뜰주유소를 늘렸다.

주유소 수가 적정 수준보다 5000개가량 많은 ‘과포화상태’에서 주유소업계가 가격으로 생존경쟁을 펼치고 있는 중에 알뜰주유소 정책을 도입해 일반 주유소 사업자 경영환경을 더욱 악화시켰다. 경영이 어려워 거래상황기록부 작성을 위해 추가 인력을 고용할 형편이 안 되고, 무리한 규제로 과태료가 늘어나면 주유소 경영난이 심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원인은 정부가 제공했지만 주유소협회가 정유사와 대리점 등을 포함한 석유업계 전체 동의를 확보하지 않은 상태로 다급하게 동맹휴업을 추진한 것은 경솔한 판단이라는 평가다. 소비자를 볼모로 한 동맹휴업은 당장 모든 주유소가 망할 정도로 다급한 사안이 아니면 대중에게 납득받기 어렵다. 그런데도 주간보고 반대를 위한 카드로 꺼냈다는 것은 정말 휴업을 하겠다는 것보다 협상전략일 뿐이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주유소협회는 지난 2012년에도 알뜰주유소 반대를 위한 동맹휴업을 예고했다가 철회한 사례가 있다. 당시 도입된 알뜰주유소라는 기존 주유소 경영에 위협적인 정책 시행에 반대하기 위한 동맹휴업도 성사되지 못했다.

이와 비교해 이번 동맹휴업 추진 동기인 거래상황기록부 건은 주유소업계에 끼치는 무게감이 작다. 명분이 약한 만큼 정부가 사업정지 등 강수를 꺼내자 동맹휴업 참여의사를 밝혔던 일부 주유소사업자가 발을 빼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는 얘기도 나온다. 다만 주유소협회는 거래상황기록부 주간단위 개편에 따라 회원사 회비 납부 명목인 보고업무를 석유관리원에 이관해야 해 밥그릇을 뺏길 긴박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주유소협회가 회원사에 동맹휴업 참여를 종용했다는 말이 석유업계에 돌고 있다.

결국 정부의 무리한 정책 시행과 주유소협회의 밥그릇 지키기에 소비자만 골탕 먹는 사태가 벌어지게 된 것이라는 결론이다. 석유업계 관계자는 “과거 정책 실패를 용인하지 않고 탈세방지 명분만 내세우는 정부나 밥그릇을 지키려고 소비자를 등한시한 주유소협회 둘 다 문제”라고 말했다.


[자료:한국주유소협회]

주유소파업 본질은 밥그릇 싸움...애꿎은 소비자만 불편


함봉균기자 hbkon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