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콘텐츠산업 희망이다]<1>뿌리를 만드는 창작자의 고단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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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어렵게 방송 막내 작가 일을 구한 이후로 단 한 번도 맘 편히 살아본 적이 없어요. 녹화 기간엔 밤잠 못자면서 일해도 100만원 남짓의 월급을 받고 생활을 이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합니다. 그렇다고 이 일을 그만두고 어디 갈 데도 없고.”(외주제작사 작가 유 모 씨·27세)

콘텐츠산업의 뿌리를 만들어내는 작가들이 흔들린다. 생활고로 안타깝게 생을 마감한 최고은 작가 3주기가 다가오지만 작가들의 삶은 여전히 고단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고용의 불안정성이다. 소설을 쓰는 순수문학 작가부터 시나리오작가, 방송 작가에 이르기까지 일정 수준의 임금을 정해진 날짜에 받는 비중은 극소수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자료에 따르면 전문 이야기 작가 10명 중 6명은 프리랜서(자유기고가)로 고정적인 일자리가 없다.

창작물 대가는 야박하기 짝이 없다. 500만원 이하가 전체의 32.4%를 차지한다. 절반이 넘는 창작자는 이야기를 판매해본 경험조차 없다. 이게 바로 콘텐츠의 뿌리를 만들어내는 창작자의 현실이다. 대중의 외면을 받는 순수문학 작가들은 아르바이트를 동시에 하지 않는 이상 생계유지가 힘들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한 소설 작가는 “공모전을 바라보고 등단을 위해 몇 개월간 글을 쓰려고 하지만 사실상 생계유지를 위해 자서전 대필이나 논술 강사처럼 다른 일을 병행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글을 쓸 때 몰두해야 하는데, 사실상 투잡으로는 제대로 글쓰기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가장 대중적이라는 예능프로그램을 만드는 방송작가 환경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메인 작가’계열에 속하지 않는 이상 계속 고용불안정성을 안고 살아간다.

익명을 요구한 한 방송작가는 “정규 프로그램에 편성됐다 하더라도 방송국 사정상 결방되거나 프로그램이 갑자기 폐지되면 우리들은 일자리를 금방 잃게 되는 구조”라며 “4대 보험도 제대로 보장 받지 못하는 작가 시스템에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용의 불안정성만큼 작가의 삶을 힘겹게 하는 굴레는 낮은 창작 대가다. 월급 100만원을 채 받지 못하는 상태로 계속해서 원고를 써내야 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오랫동안 평균 이하의 월급을 받아오며 힘겹게 생활하면서도 이익집단을 구성해 목소리를 내거나 미국 할리우드 작가처럼 파업을 하는 식의 단체 행동도 작가 업계에선 불가능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이쪽 업계에서 잘못된 소문하나만 나도 다신 글을 쓸 수 없게 되는 구시대적 문화가 존재한다”며 “글을 쓰며 먹고 산 사람들은 앞으로도 본인이 이 일을 벗어날 수 없다는 어떤 체념이 기저에 깔려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한 시나리오 작가는 “1000만 관객을 동원한 시나리오 작가도 그만큼의 지분을 갖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며 “굴뚝 없이 수많은 부를 창출하는 문화콘텐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얼른 바뀌어 이야기 자산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적 시스템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기수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국내 이야기 작가들이 어렵게 살아온 것은 사실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며 “미국이 몇 해 전 작가들의 파업과 몇몇 스타의 지지선언으로 큰 반향을 일으켜 건강한 이야기 생태계를 조성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우리나라도 단발성이 아닌 이야기 산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각계각층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박소라기자 srpark@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