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하게 작동하는 시계 무브먼트를 만들기 위해서는 공학적 이해부터 세밀한 공구가 필요합니다. 과거 스위스 시계 장인들의 노력부터 이어진 국민 정서가 오늘날 스위스 연구력의 토대가 된 것 아닐까요.”
요르그 알 레딩 주한 스위스 대사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스위스가 이룬 성과를 세계 최고의 스위스 시계 제조기술에 빗대 설명했다. 기술 구현을 위해 스스로 노력하는 스위스인의 성격을 말한 것이다.
스위스는 현대 과학기술 발전에 큰 역할을 한 나라다. 전 세계인이 쓰는 인터넷 월드와이드웹(WWW)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고, 최근 우주 빅뱅의 신비를 풀어낼 ‘신의 입자’로 불리는 힉스 입자도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에서 발견했다. 과학계에서의 지위를 증명하듯 알버트 아인슈타인을 비롯한 노벨 화학·물리·의학상 수상자를 20명이나 배출했다. 스위스 인구는 서울시 인구보다도 적은 800만명이다.
레딩 대사는 스위스의 연구 환경에 대해 “아이디어를 가진 모든 사람들에게 스위스 연구소는 열려있고 진입장벽 없이 전세계 주요 인력을 받아들이는 환경”이라며 “발달된 금융 인프라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이런 환경 덕에 스위스는 글로벌 IT 기업들의 연구 메카로 자리 잡았다. IBM은 미국을 떠나 처음으로 스위스에 연구개발(R&D) 센터를 구축해 운영 중이다. 이곳에서만 4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구글 역시 미국을 제외하고 가장 큰 R&D 센터를 스위스에서 운영 중이다. 구글맵, 구글어스 등이 개발된 곳이다.
생명과학 분야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스위스 바젤은 노바티스, 로슈 등 주요 기업을 포함한 900개 회사가 위치해 있다. 세계 생명과학산업 전체 규모 1조달러 중 10분의 1을 창출하는 도시가 됐다.
레딩 대사는 “연구기관과 기업이 서로 협력하기 좋은 기술개발 환경에 더해 높은 수준의 교육기관도 글로벌 기업들을 스위스에 자리잡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스위스는 취리히 공대와 로잔 공대라는 공학 기술 교육의 양대 축을 갖고 있다. 학생들이 다양한 아이디어를 자유롭게 연구하는 교육 환경으로 유명하다. 세계 125개국에서 온 학생들이 재학 중이다.
두 대학은 세계적인 혁신 기술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취리히 공대는 공기 중 이산화탄소와 햇빛만으로 연료를 만드는 ‘솔라 케로신(Solar Kerosene)’을 개발하고 있다. 로잔 공대는 화석연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태양광 발전으로만 세계 일주를 하는 비행기 ‘솔라 임펄스(Solar Impulse)’와 인간의 뇌를 완벽하게 컴퓨터로 구현하는 ‘휴먼브레인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연구 활동과 함께 다수의 스타트업도 배출했다. 두 공대에서 나온 스타트업 기업만 420개다. 창업을 위해 취리히 공대 창업기업에서 유치한 금액만 850억원 규모다. 마우스 등 컴퓨터 입력장치로 유명한 로지텍은 로잔공대에서 시작된 기업이다.
레딩 대사는 “두 나라의 협력 네트워크 구축에 노력하고 있다”며 “창의적인 아이디어에 항상 열려있는 스위스의 연구 환경과 한국의 기업 등이 함께 과학기술 분야에서 성과를 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주한 스위스 대사관은 지난 5월 ‘제 1회 한국-스위스 생명과학 심포지엄’을 열고 스위스 주요 기업과 연구 관련 관계자들이 참여해 양국 간 협력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자리를 가졌다. 또한 로잔공대를 중심으로 IBM 등 80여개 기업·기관들이 참여하는 휴먼브레인 프로젝트를 국내 교육·연구기관에 소개했다.
그는 전자산업을 비롯한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이 이룬 성과를 예로 들며 “창의적(Creative)인 한국 기업들이 어떤 고민을 하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스위스 연구 기관 등이 늘어나고 있다”며 “대학부터 연구기관, 기업으로 이어지는 스위스의 연구 환경은 한국 기업에게도 매력적일 것”이라고 전했다.
1951년 스위스 출생
1983~1986년 주 브라질 스위스 대사관 영사
1988~1992년 스위스 연방경제부 예산집행부장
1992~1994년 아프리카 개발은행 이사
1996~1999년 동유럽 러시아 중앙아시아 경제원조부장
1999~2006년 스위스 경제부 양자경제집행위원회 의장
2006~2008년 스위스 경제부 집행위원회 위원
2008~2012년 주 싱가포르·브루나이 스위스 대사
2012년 주한 스위스 대사 부임
김창욱기자 monocl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