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통신기술 연구개발(R&D) 사업에 처음으로 경쟁방식이 도입됐다.
연구자를 미리 선정해 전권을 맡기던 것과 달리 연구자를 중도에 탈락시키는 등 긴장감을 불어넣는 방식이어서 ‘선의의 경쟁’을 촉발할 것으로 기대됐다. 경쟁을 통한 선도형 기술 개발을 비롯해 미개발 기술의 다양한 접근방식 확보, 초기 결과물 확인으로 성공률 제고 등 다양한 시너지효과도 예상됐다.
17일 미래창조과학부와 통신업계에 따르면 ‘개방제어기반 분산구조 모바일 코어네트워크 기술’ ‘양자 암호 네트워크 핵심 기술’ 개발 과제에서 경쟁형 R&D 사업이 처음으로 시작됐다. 모바일 코어네트워크 기술 개발은 네트워크 업체인 콘텔라와 이루온이 경쟁에 돌입했다. 일찌감치 사업자를 선정한 양자 암호 네트워크 분야에서는 KAIST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이 기술력을 겨룬다.
미래부는 지난 3월 복수 연구자가 경쟁하다 중간평가를 거쳐 일부가 탈락하는 ‘경쟁형 R&D’ 제도 도입을 밝히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예산 낭비를 막기 위해 동일 연구주제는 단일 연구자(기관)만 선정해 지원하는 것과 비교하면 파격적인 제도다. 창조경제 실현을 위해서는 ‘의도적 중복’으로 경쟁을 유도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미래부 관계자는 “경쟁형 R&D를 통해 아직 개발되지 않은 기술에 대한 업체별 다양한 아이디어와 접근방식을 이끌어낼 수 있다”며 “경쟁하는 과정에서 개발된 결과물을 직접 볼 수 있기 때문에 서류만으로 업체를 선정하는 것보다 실패 확률도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경쟁형 R&D는 크게 네 가지 방식으로 나뉜다. 차례대로 일부를 탈락시키는 ‘토너먼트’ 방식, 기획 단계에서 평가를 진행하는 ‘경쟁기획’ 방식, 최종 결과물 평가에 따라 연구비를 차등 지급하는 ‘후불형 서바이벌’ 방식, 서로 다른 접근방식으로 과제 수행 후 중간평가로 우수 과제를 지원하는 ‘병렬형 과제수행’ 방식 등이다.
미래부는 제도 도입 초기이기 때문에 가이드라인 외에도 새로운 유형을 개발해 운영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번 통신분야 과제에서도 1년간 개발한 결과물을 심사하지만 평가점수가 낮은 곳을 탈락시킨다는 계획은 없다. 우수 평가를 받는 곳이 주도권을 쥐게 되면 다른 한쪽은 협력자로 활동하는 등 유연한 방식을 취할 계획이다.
임용재 미래부 네트워크 CP는 “내용면에서 어느 쪽의 결과물이 연구목적에 부합하고 충실하게 과제를 수행했는지 중점적으로 볼 생각”이라며 “선택을 받지 못한 쪽을 무조건 탈락시키거나 사업에서 배제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은 결과를 위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두려는 의도다.
경쟁형 R&D 제도에 대한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한 통신장비 업체 임원은 “중소기업은 아무래도 단독으로 과제를 수행하는 방식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면서도 “2년 이상 진행되는 R&D 과제 첫해에는 기획이나 설계 등 비용부담이 적어 경쟁에서 지더라도 큰 부담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 입장에서는 당연히 경쟁체제를 원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통신 외에도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후불형 방식으로 경쟁형 R&D 사업이 추진 중이다. 미래부는 첨단융합기술 개발사업, 글로벌 프론티어 사업 등 과학분야 두 개 과제에서도 경쟁형 R&D 시범사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지속적인 보완을 통해 제도를 확산해나간다는 방침이다.
<통신분야 경쟁형 R&D 사업 / 자료:미래부, 업계 종합>
안호천기자 hca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