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경쟁형 정부R&D 더욱 확대해야

선정 전에는 치열한 경쟁이다. 정작 뽑히면 열의가 식는다. 하다 보니 뭔가 맞지 않는 듯해도 멈추거나 방향을 바꾸지도 않는다. 성과물이 나왔지만 애초 원했거나 달라진 현실과 맞지 않아 사실상 실패다. 정부 연구개발(R&D) 사업에서 흔히 보는 장면들이다. 정부가 이를 확 뜯어고치려 한다. 선정보다 개발 과정에서 경쟁을 북돋는 정책이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차세대 모바일 핵심 네트워크와 양자 암호 분야에 처음 경쟁형 R&D 사업을 시작했다. 해당 분야 과제를 한곳에 몰아주는 것이 아니라 따로 따로 복수로 추진해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한 쪽에 힘을 실어주는 사업이다. 정부는 이 경쟁 모델을 통신뿐만 아니라 과학기술 분야에도 적용할 방침이다. 경쟁으로 성과물 도출을 더 극대화하겠다는 시도다.

바람직하다. R&D 개발 과제를 수행하는 주체들이 독점을 방어막으로 대충대충 하거나 겉치장만 하는 일을 없앨 수 있다. 그간 이 문제 때문에 중간평가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했지만 약간의 긴장감 조성 외엔 별 효과가 없었다. 이러니 산업계에 쓰임새가 적거나 효율적이지 않은 성과물만 나온다. 경쟁을 시키면 적어도 개발은 뒷전이고 선정에만 골몰하는 일은 사라진다.

물론 개발 경쟁 참여자 부담은 커진다. 확실히 선정되지 않았는데 투자를 했다가 경쟁자 기술이 최종 낙점되면 낭패다. 하지만 어차피 초기에 R&D 사업자로 최종 선정되지 않는다. 이때까지 많은 투자가 필요하지 않다. 주도권을 잃은 기술 중 일부 좋은 기술을 재활용할 여지도 생긴다. R&D 성과를 더 풍부하게 낼 수 있다.

어차피 경쟁은 R&D 속성이다. 남보다 더 빨리 더 좋은 기술을 개발하면 더 큰 과실을 얻는 원칙이 적용되는 세계다. 실패한 기술이라도 예기치 않게 나중에 더 각광을 받는 일도 이따금 있다. 과제 선정에 탈락했다고 아예 개발 시도를 포기하면 이런 행운은 절대 나오지 않는다. 참여자들의 자존심 경쟁까지 끌어올릴 경쟁형 R&D를 정부 과제 전체로 확대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