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가 콘텐츠산업 희망이다]<4>이야기 산업법, 현실을 반영해야한다

정부가 콘텐츠산업의 뿌리인 이야기를 독립적인 산업으로 구분해 정의하고 이를 토대로 정책을 마련하는 이야기산업법 제정에 나섰다. 콘텐츠의 뿌리인 이야기 창작물이 제대로 가치를 보장받고 이야기가 널리 퍼져 거래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자는 취지다. 이야기 기획자, 저작권법 전문가를 대표하는 3인이 제시하는 법의 올바른 제정 방향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이야기가 콘텐츠산업 희망이다]<4>이야기 산업법, 현실을 반영해야한다

장용민 작가

“까다로운 요건 탓에 상당수 작가가 예술인으로 인정을 못 받는 법안은 자괴감만 줄 뿐입니다. 이야기산업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장용민 작가는 생활고로 세상을 달리한 시나리오 작가 고 최고은씨 사례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만든 법안이 실효성이 없다고 평가했다. 장 작가 역시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이란 대표작을 내놓기 전까지 생활고에 허덕였기 때문이다.

그는 “‘예술인 복지법’은 복지가 필요한 저소득 예술가를 위한 법안인데 자격 요건인 ‘5년 동안 5편 이상의 작품을 문예지에 기고하거나 1개 작품 이상 출간한 작가’는 10명 중 1명도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순수문학 위주의 사회와 문학계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장 작가는 “우리나라에서는 미국이나 일본과 달리 판타지나 로맨스 같은 장르문학이 주류로 인정받지 못한다”며 “흥미를 잃은 독자가 점점 문학을 꺼리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장르문학이 영화나 연극 등으로 이어지는 좋은 소재이지만 제대로 된 등용문조차 없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이야기산업법도 보다 면밀한 현실 파악이 우선이라고 꼬집었다. 장 작가는 “이야기법도 좋은 의도로 만들었지만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예술인복지법의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저작권자 유통자 간에는 힘의 균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만큼 사회적 약자인 저작자를 보호하는 것은 법으로 마련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희재 올댓스토리 대표

“기존에 창작물로 보호받지 못하고 시장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던 ‘이야기’를 완성된 창작물로 인정하자는 게 이야기 산업의 출발입니다.”

김희재 올댓스토리 대표는 이야기 산업이 활성화되려면 우선 이야기를 콘텐츠와 별도로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이야기 거래를 위한 저작권처럼 다양한 안전장치는 물론이고 기획사(에이전시) 관련법과 지원법, 이야기 플랫폼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는 “창작 능력은 그 자체로 인정받고, 매체에 적합한 형태의 집필능력은 다르게 논의하는 편이 바람직하다”고 제시했다. 이야기를 개발 단계에 따라 세분화하자는 주장이다. 아이디어가 좋은 사람이 드라마나 영화에 적합한 구성과 표현까지 다 잘 해내기 위해서는 오랜 수련 기간이 필요하다. 이를 전문적으로 세분화할 때 리스크를 줄이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초기 창작자도 자신의 부족함에 채우고 협업할 수 있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창작자가 안심하고 초기 아이디어가 사라진다 해도 거래할 수 있도록 창작자의 기여를 보장하는 환경과 저작권 보호, 판권 거래의 공정성 등이 법에서 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정부는 산업과 산업의 만남이 원활하게 이뤄지고 그 과정에서 불공정한 계약이 이뤄지지 않도록 보호하는 법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경수 한국저작권위원회 연구실장

“구름빵의 백희나 작가처럼 매절 계약 후에 권리를 주장하는 사례가 해외에도 있지만 승소하지 못했습니다.”

최경수 한국저작권위원회 연구실장은 “2008년 독일 카메라감독 바카노가 2차 세계대전을 무대로 한 영화 ‘잠수함’이 크게 흥행하자 자신의 보수가 현저히 적다고 소송을 제기했지만 패소했다”고 밝혔다. 독일의 상당보상청구권이나 미국의 계약해지권 도입을 생각해볼 수 있지만 기존 저작권법이나 민법 원리를 흔들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야기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우선 저작권법으로 창작자를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권리자와 이용자 간 자율적 계약에 지나치게 의존해선 안 된다고 조언했다. 협상력에 차이가 있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사정이 발생할 경우 사회적 약자가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최 실장은 저작권법이 창작자의 권리를 위한 기본 법률이란 점에서 이야기산업법 제정 때도 참고해야 한다고 밝혔다. 창작자가 저작권법상의 인격적, 재산적 권리를 통해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정신적, 물질적 보상을 받기 때문이다.

표준계약서 보급과 창작자의 권리를 알리는 것도 중요한 과제로 꼽았다. 최 실장은 “지난 2004년 이후 나온 출판과 문화예술 분야 표준계약서나 계약 체결 시 주의 사항을 잘 활용하면 창작자 보호에 유용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