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석의 산업에세이]공기업 혁신과 평가의 잣대

[김동석의 산업에세이]공기업 혁신과 평가의 잣대

날갯짓을 포기한 도도새는 게으름 때문에 멸종했다고 한다. 사방에 먹이가 널려 있어 굳이 날지 않아도 생존에 큰 문제가 없었다는 근거에서다. 반대 논리도 있다. 도도새가 날갯짓을 포기한 것은 하늘의 포식자를 피하기 위한 것으로 비행능력을 스스로 없앴다는 설도 있다.

흔히 도도새를 공공기관에 빗댄다. 혁신과 진화를 거부한 채 온실 속 먹잇감만을 추구하는 것을 비유한 것이다. 익숙한 방식을 고수하고 ‘귀차니즘’을 거부한다는 측면에서는 틀린 말이 아니다. 부채 상위 공공기관 18곳의 한 해 이자만 9조원이 넘는다. 하루에 247억원꼴이다. 민간기업이라면 파산했을 기관들이 공공이라는 간판을 달고 연명하고 있다.

공기업도 한때는 모범기업인 적이 있었다. 새마을운동 바람에 맞춰 첨단 농업기술을 각 농촌에 보급해 농가수익을 극대화했다. 값싼 전기 공급으로 삶의 질을 높였고 철도와 도로를 건설해 전국을 일일생활권으로 만들었다. 국민행복시대를 열었다는 자긍심이 높았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 시대흐름에 부응하지 못하면서 천덕꾸러기 신세가 됐다. 1960년대 신의 직장으로 불렸던 석탄공사는 변화하는 에너지정책에 대응하지 못해 만성적자다. 석유공사와 가스공사는 정권의 무분별한 해외투자로 빚더미에 올라앉았다. 부채감축은 발등의 불이다. 당장 끄지 않으면 국가경제 전체로 재앙이 번진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이 우리 사회의 도도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이유다.

따져보면 공기업 부실의 책임은 우리 모두에게 있다. 국가 핵심사업이라며 밀어붙인 정부, 표심을 얻기 위해 타당성 없는 지역사업을 요구했던 국회, 저렴한 서비스로 풍요를 즐겼던 국민까지 그 누구도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자원개발 공기업들은 사라고 해서 샀고, 팔라고 해서 팔았는데 뭐가 문제냐며 읍소한다. 그러나 이런 읍소가 방만경영과 모럴헤저드를 합리화할 수는 없다.

기획재정부가 지난해 공공기관들의 경영성적을 발표했다. 지난해 하위 등급을 받았던 에너지 공기업들은 올해도 ‘보통’ 이하다. 그나마 지난해 꼴찌(E)였던 한국석유공사가 보통(C)으로 2단계 상승했다.

성적표에 따라 성과급이 500%에서 0%까지 차등 지급된다. 기관장 해임까지 거론되고 있다. 이 때문에 공기업들은 평가 준비를 위해 1년의 절반 정도를 여기에 매달린다. 10여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는 합숙까지 하며 밤을 지새운다. 가정이 하숙집처럼 느껴지는 그들에게 소속 공기업은 ‘신이 버린 직장’이다. 오히려 ‘신이 숨겨둔 직장’으로 여겨지는 곳은 정권이 공기업에 내려 보낸 ‘낙하산’ 들이다.

공공기관 경영평가는 깐깐해야 한다. 하지만 기관별 평가기준도 꼼꼼히 살펴야 한다. 대국민 서비스 기관이 있는가 하면 사업 자체가 100% 제조업인 기관이 있다. 서비스와 제조업을 평가할 때 일률적 잣대는 문제의 소지가 있다. 처한 상황이 다르고 임직원도 300명에서 많게는 2만명으로 천차만별이다. 고유업무의 충실성에 더 많은 점수를 부여하는 형평성이 필요해 보인다.

손톱 밑 가시는 시장 규제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공기업을 평가하는 잣대에서도 ‘신발 속 돌멩이’가 존재할 수 있다. 공기업 역시 이번 경영평가를 계기로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역경 없이 순탄한 삶은 단조하고 무료하다. 무사안일에 빠져 스스로 날개를 퇴화시킨 도도새가 되어서는 안 된다.

김동석 성장산업총괄 부국장 d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