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24>블로그

나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는 독일의 헌법학자이자 정치학자인 칼 슈미트(Carl Schmitt)는 1918년 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일기학’이라고 번역될 수 있는 ‘부리분콜로지(Buribunkology)’에 관한 논문을 발표했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서사시 ‘돈 주앙’(1819~1824). 16편까지 쓰여졌고 17편은 그의 죽음으로 미완성이다.
영국의 낭만파 시인 바이런의 서사시 ‘돈 주앙’(1819~1824). 16편까지 쓰여졌고 17편은 그의 죽음으로 미완성이다.

이 논문은 일기 쓰는 자를 의미하는 ‘부리분크(buribunk)’의 역사철학적 고찰인데 흥미롭게도 일기 또는 일지가 세계사 서술에서 가진 의미를 탐색하고 그 기원을 추적하는 것이었다.

법학자로만 알려진 슈미트의 이런 연구가 알려진 것은 독일의 저명한 미디어 이론가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의 소개 덕분이다.

슈미트가 제일 먼저 검토한 사람은 바이런의 서사시, 모차르트의 ‘돈 조반니’를 비롯해 수많은 예술가, 소설가, 학자 등이 다룬 전설적 이야기의 주인공 ‘돈 주앙(Don Juan)’이다. 돈 주앙의 여성 편력은 놀라울 정도인데 그를 거쳐 간 여성이 1003명에 달했다. 슈미트의 관심은 이 숫자보다는 누가 이런 기록을 작성했는지 하는 것이었다. 그에 따르면 돈 주앙은 과거나 미래에 관심이 없고 오로지 현재의 쾌락만을 추구하는 사람이며 따라서 그가 기록했을 리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인가. 기록을 한 사람은 바로 그의 몸종인 ‘레포렐로(Leporello)’였다. 그는 돈 주앙의 모든 행적을 매일매일 적어뒀고 1003명 중 3명은 실존한 인물로 확인될 정도로 정확하기도 했다. 그러나 슈미트는 이 기록이 역사적, 사회적 조건이나 통계적 분석 등이 빠져 있다는 점에서 세계사 서술에 기여하지 못하며 부리분콜로지의 위치를 가지지는 못한다고 평가했다.

슈미트는 페르커를 거쳐 슈네케에 이르러 일기가 진정한 부리분콜로지로서 정립되었다고 평가하지만 미디어 이론가인 키틀러나 우리의 관심은 부리분콜로지, 즉 매일매일의 일상사를 기록해나가는 일기가 가진 의미다.

슈미트는 일기를 쓰는 자, 즉 부리분크의 철학을 데카르트의 명제에 이어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말한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쓴다, 고로 존재한다. 나는 공시한다, 고로 존재한다.” 데카르트가 사유를 인간 존재의 본질이라고 보았다면, 슈미트는 사유를 표현하는 글쓰기가 인간의 본질이라고 본 것이다.

사유-말하기-글쓰기-공시하기로 이어지는 커뮤니케이션이 인간 존재의 핵심인 셈이다. 좀 어려운 이야기지만 슈미트는 글을 쓰는 것이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이고 나아가 세계사에 참여하는 것이라 본다.

구글 검색을 해보면 부리분콜로지는 SNS인 페이스북의 페이지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떤 블로거는 블로깅의 기원이 바로 슈미트의 부리분콜로지라고 주장한다.

블로그, 정확히 웹블로그는 웹(web)에 쓰는 일기 또는 일지(log)라는 말이다. 블로그는 내가 생각하는 바를 일기처럼 표현한다. 블로그가 1인 미디어의 도래라고 환호하던 초창기 평가에서 보듯 부리분크의 철학 그대로다.

지금의 SNS나 블로그가 과연 슈미트가 부여하는 의미를 가지는 그런 글쓰기인가. 키틀러는 디지털 시대의 글쓰기가 전자 네트워크라는 무한 복제의 루프 속에 들어가 진정한 글쓰기로서의 의미를 잃어가고 있다고 비관적으로 본다. 이른바 ‘글쓰기의 종언’이다.

SNS의 글쓰기는 주체로서의 글쓰기가 아니라 기록강박에 의한 노출증, 그런 기록을 들여다보는 관음증, 그리고 자신이 쓴 글에 대한 반응에서 희열을 느끼는 나르시시즘에 다름 아니다. 글쓰기의 이런 병리적 모습은 키틀러 지적처럼 글쓰기가 친구, 댓글, 좋아요 수 등 숫자로 치환되는 네트워크에 편입되었기 때문이다. 글쓰기가 존재의 의미를 가지지만 그 욕망은 병리적이다.

일상사를 기록하고자 하는 욕망이 SNS나 블로그까지 공명하고 있지만 그것은 역사적 의미를 가지지 못하는 또 다른 레포렐로일 뿐이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