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이 됐다.’
2분기 들어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실적이 악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국내 제조업 전체가 충격에 휩싸였다. 삼성전자는 외부적으로 스마트폰 사업 충격 영향을 축소하려고 애쓰지만, 내부적으로는 어느 때보다 위기감이 팽배한 상황이다.
올 들어 스마트폰 시장 성장 둔화를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수요가 꺾이는 속도가 생각보다 훨씬 빠르다. 스마트폰 사업 침체를 상쇄해 줄 것으로 기대됐던 태블릿PC마저 기대 이하 판매량을 기록 중이다. 하반기 시장 상황도 녹록지 않다. 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들이 삼성전자 턱밑까지 쫓아왔고, 고가 시장에서는 애플이 철옹성을 구축하고 있다. 애플은 고가 시장에서 점유율을 지키기 위해 아이폰 디스플레이 크기를 키우고 출시 모델수를 늘리는 등 유례없는 수준으로 변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총체적인 난국이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경착륙 충격으로 소재·부품·장비 등 국내 후방 산업에 적지 않은 파급이 우려된다.
◇삼성전자 2분기 실적 하향조정 릴레이
증권사 리서치센터뿐 아니라 각종 시장조사 업체들은 최근 삼성전자 2분기 실적 추정치를 하향 조정하고 있다. 차이는 있지만, 당초 2분기 삼성전자 스마트폰 출하량은 8800만~9000만대, 태블릿PC는 1200만~1500만대 수준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최근 들어 스마트폰 7600만~7800만대, 태블릿PC 850만~900만대 수준으로 잇따라 낮추는 추세다. 이에 따라 2분기 삼성전자 IM부문 매출 및 영업이익 추정치도 5~10% 가량 내리고 있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 판매량이 동시에 꺾이면서 삼성전자는 적잖이 당황하는 모양새다. 올해 삼성전자 사업 전략의 핵심은 스마트폰 사업 둔화 충격을 태블릿PC로 상쇄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태블릿PC 판매량이 생각보다 늘지 않으면서 사업 전략 자체를 전면 재검토해야 할 처지다. 2분기 삼성전자 중저가 스마트폰 및 태블릿PC 판매가 둔화된 것은 중국 시장 탓이다. 당초 올해 중국 시장에서 롱텀에벌루션(LTE) 스마트폰이 크게 늘어날 것으로 기대됐다. 그러나 4세대 이동통신 스마트폰 수요는 크게 늘지 않는 반면 3세대 스마트폰이 되레 인기를 끄는 등 예측 방향과 정반대로 시장이 움직였다. 레노버·화웨이 등 중국 기업들이 가격 경쟁력 있는 제품을 잇따라 내놓은 것도 영향을 미쳤다.
대외 시장 상황도 좋지 않다. 2분기 원·달러 평균 환율은 1028원으로 전 분기보다 4% 이상 낮아졌다. 삼성전자는 이미 스마트폰 해외 생산거점을 다변화했지만, 환율 영향에서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향후 스마트폰 범용화로 중저가 제품 비중이 늘고, 무선사업부 수익성은 더욱 낮아질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는 7인치대 태블릿PC 시장에서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데, 최근 중국 업체들이 7인치대 저가 제품을 집중적으로 내놓고 있다”며 “고가 시장에서는 애플에 밀리고 저가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에 쫓기는 샌드위치 신세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스마트폰 사업 충격 본격화됐지만, 삼성전자 의존도는 여전
지난해 말 기준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삼성그룹 내 주요 14개 계열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3%에 이른다. 국내 500대 기업 영업이익 총액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35%에 육박한다. 지난 1분기 기준으로 IM부문이 삼성전자 전체 영업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5.7%까지 치솟았다. 지난해 3분기 68% 수준보다 7%P 이상 늘어난 셈이다. 2분기에도 삼성전자 IM부문이 우리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이 추락하면서 반도체·디스플레이·배터리·부품 등 국내 후방 산업에 적잖은 타격을 주고 있다. 삼성그룹 부품 계열사들은 생산량의 60% 이상을 삼성전자에 납품할 정도로 내부 의존도가 높다. 삼성전자 스마트폰·태블릿PC가 얼마나 팔리느냐에 따라 소재·부품·장비 협력사 실적은 춤을 춘다.
갤럭시S4가 출시된 지난해 2분기 삼성디스플레이는 1조1200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삼성전기도 2224억원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올 들어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 스마트폰 수요 둔화로 능동형(AM)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 출하량이 뚝 떨어졌다. 회사 수익성도 급락하고 있다.
삼성전자 DS부문은 3차원 적층구조 ‘V낸드’ 등 대용량 메모리 반도체 수요처를 고민해야 하는 과제를 안았다. 모바일 D램, 시스템LSI의 고성능 프로세서 역시 예상보다 반사이익을 얻기 힘들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 쏠림 현상 심화…최악의 경우 노키아 사태 일어난다
‘삼성전자 효과’로 우리 경제 외형이 유지되고 있지만, 반대로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 쏠림 현상에 따른 위험은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한 때 노키아는 세계 휴대폰 시장의 50%를 차지했다. 노키아가 핀란드 정부 예산보다 많은 매출을 올린 적도 많았다. 그러나 이는 핀란드 경제 체질을 약화시키는 원인이 됐다. 노키아는 결국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되는 처지로 전락했다.
우리 경제가 삼성전자 스마트폰 사업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상황을 탈피하고, 산업 전반의 체질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반도체·TV 등 기존 주력 산업을 키워 스마트폰 충격을 최소화하는 한편 사물인터넷(IoT)·웨어러블 디바이스 등 신성장동력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우리 소재·부품 업체들이 쉽게 진출할 수 있는 시장이다. 최근 스마트와치뿐 아니라 구글 글라스 등 다양한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시장에 속속 선보이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미 갤럭시 기어 시리즈를 두 종류 이상 출시했고, 소니도 최근 스마트와치를 발표했다. 애플도 하반기 아이와치를 공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자공학 전공의 한 대학교수는 “경박단소 기술을 보유한 소재부품 업체는 웨어러블·IoT 시장에 진출하는 데 유리하다”며 “현재 기술로 스마트폰 외 다양한 응용처를 발굴하고, 해외 시장을 적극 공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