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플래그십 스마트폰 시장이 둔화되면서 삼성전자는 다모델 전략을 구사해왔다.
소비자들의 요구를 가장 신속하게 파악해 출시하는 이른바 스마트폰 사업의 ‘패스트 패션화 전략’이다. 스마트폰의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 성능이 상향 평준화된 만큼 향후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주변기기·액세서리 등 부가 사업을 키우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의 패스트 패션화는 세계 최고 수준의 제조업 경쟁력을 갖춘 삼성전자만 가능한 전략이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2년부터 케이스·카메라모듈·렌즈 등 핵심 부품을 베트남 공장에서 자체 생산하고 있다. 사실상 반도체부터 스마트폰 소재·부품에 이르는 수직 계열화를 완성한 셈이다.
스마트폰 하드웨어 플랫폼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기 등 관계사뿐 아니라 핵심 협력사를 중심으로 모듈과 드라이버 펌웨어를 패키지로 공급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AP) 기반 하드웨어 플랫폼에 디스플레이·카메라모듈 등 부품 구성만 바꾸면 고가부터 중저가까지 다양한 모델을 빠른 속도로 출시할 수 있다.
하드웨어 플랫폼 전략으로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개발 속도를 앞당겼을 뿐 아니라 경쟁사를 압도하는 원가 경쟁력을 갖췄다. 갤럭시S4는 갤럭시S2 때보다 개발 기간이 35% 줄었고, 완제품 리드 타임은 20% 이상 빨라졌다. 갤럭시S5 같은 플래그십 모델 판매가 부진해도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플랫폼을 기반으로 새로운 모델을 신속하게 내놓을 수 있다.
향후 스마트폰 조립 무인자동화 공정까지 갖추면 전략 완성도는 더욱 높아진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스마트폰 생산공장 무인 자동화를 추진 중인 것도 이런 계산이다. 상품기획·개발 기간을 앞당기고 제조비용을 낮춰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을 극대화할 수 있다.
문제는 삼성전자가 전략 변화에 맞춰 조직 혁신을 하지 못하다고 있다는 평가다. 스마트폰 사업을 패스트 패션처럼 하려면 시장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고 발 빠르게 대응해야 한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최근 트렌드 변화뿐 아니라 혁신에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지문인식·손떨림방지(OIS)·방수방진 등 새로운 기능을 먼저 검토했지만, 경쟁사에 쉽게 따라잡히기 일쑤였다.
개발·제조 기간이 단축되면서 품질·조달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출시한 갤럭시S5 렌즈 수율 문제로 초도 생산에 어려움을 겪었고, 이후 카메라 불량 사태로 제품을 무상 교환 조치한 바 있다.
삼성전자 임원 출신 한 관계자는 “품질 및 조달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 최근 새로운 기능 채택을 꺼리는 내부 분위기가 만연했다”며 “애플은 몰라도 2위권 업체에도 밀리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김주연기자 pillar@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