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교과서로 삼는 기업이 있다. 바로 세계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한 삼성전자다. ‘삼성전자 배우기’는 중국에서 한류 못지않은 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 벤치마킹 연수 상품까지 출시됐다. 이 연수는 중국 중견기업 CEO를 타깃으로 기획됐다. 단순히 삼성을 견학하는 수준이 아니라 삼성 계열사 사업장을 현장 방문하고, 경영이념과 철학까지 배울 수 있도록 돼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등 주력 소재·부품부터 스마트폰·TV 등 완제품에 이르는 제조업을 수직계열화한 삼성전자는 중국 기업들이 배워야 하는 동시에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은 삼성전자 성공 전략 배우기에 여념이 없다. ZTE·화웨이·레노버 등 선두권 업체들은 삼성전자를 벤치마킹해 부품 수직계열화 비중을 높이는 한편 브랜드 단일화에 집중하고 있다. 화웨이는 사내에 삼성전자 전담팀을 꾸리고 성공 전략 분석에 나섰다.
이 같은 현상은 과거 중국에서 일었던 포스코 배우기 현상과 묘하게 오버랩된다. 고(故) 박태준 회장은 중국에서 영웅 대접을 받았다.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덩샤오핑이 중국 철강 기업에 포스코를 배우라는 특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중국 철강 업체들은 포스코를 벤치마킹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고, 많은 성과를 일궈냈다.
지난 2012년 중국은 세계 조강 생산량의 46%를 차지했다. 미국보다 10배 이상 많은 양이다. 중국 최대 철강 업체 바오스틸은 세계 2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한 때 중국이 선망했던 한국은 이제 중국산 강재를 가장 많이 수입하는 나라다. 불과 몇 십년 만에 두 나라의 상황이 180도 바뀐 셈이다. 지금 중국에서 포스코를 주목하는 기업인은 별로 없다.
경제학을 전공한 한 대학교수는 “삼성전자가 스마트폰과 TV 시장에서 세계 1위로 떠올랐지만, 패스트 팔로워란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며 “반면 중국 IT 업체들 중 상당수는 이미 ‘퍼스트 무버’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했다.
최근 중국 업체들의 약진은 우리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가전 업체 하이얼은 2008년 이후 5년 연속 세계에서 냉장고를 가장 많이 팔았다. PC 업체 레노버는 중국 시장에서 삼성 다음으로 스마트폰을 가장 많이 파는 기업이다. 한국 카카오의 2대 주주 텐센트는 시가 총액 기준으로 구글과 아마존에 이어 글로벌 IT 업계 3위다. 중국 선두 기업들은 이미 저가의 질 낮은 제품, 짝퉁 제품으로 대변되는 ‘메이드 인 차이나’ 수준을 벗어났다.
삼성전자도 중국 기업에 따라잡히면 포스코처럼 관심에서 자연스럽게 밀려날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가 지금에 안주하지 않고 더욱 혁신을 가속해야 하는 이유다. 그러나 최근 삼성전자는 혁신에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삼성 임원 출신 한 관계자는 “최근 삼성전자가 자만심에 빠져 후발 업체보다 못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이건희 회장이 강조했던 ‘위기 경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볼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형수기자 goldlion2@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