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포럼]전기(電機)는 국가경제의 뿌리

[에너지포럼]전기(電機)는 국가경제의 뿌리

“진정한 발견은 신대륙을 찾는 게 아니라, 세상을 달리 보는 방식을 찾는 데 있다”는 말이 있다. 이 말에 가장 적합한 단어가 바로 ‘창의력’ 아닐까 싶다. 스티브 잡스는 MP3를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MP3를 아이팟(iPod)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새로운 아이디어를 냈다. 스티브 잡스는 ‘발명가’가 아니라 ‘멋진 활용가’인 셈이다. 다른 말로 하면 ‘혁신적 활용가’다.

창조와 혁신이란 말이 발명에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기술이나 제품 활용 가치를 높이는 데까지 확대해 적용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 경제화두는 단연 ‘창조경제’다. 창의성과 상상력을 바탕으로 창조산업을 육성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창출해 나가자는 의미로 이해한다. 시장에 대한 창조적인 접근, 즉 ‘낯설게 보기’를 통해 차별화하는 방식으로 시장 선점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른바 ‘퍼플오션(Purple Ocean)’이다. 퍼플오션은 ‘레드오션(Red Ocean)’과 ‘블루오션(Blue Ocean)’을 조합한 말로 레드오션에서 자신만의 새 블루오션을 만든다는 의미다. 이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만드는 것이다.

지금은 혁신의 시대다. 혁신이 모든 것에 우선한다. 아니 창조가 모든 것에 우선한다. 간과해서는 안 되는 사실이 있다. 자칫 정부가 모든 역량을 혁신과 창조에 몰입하는 사이에 그렇지 못하는 산업은 더욱 더 ‘혁신 격차(Innovation Division)’에 시달릴 수가 있다.

혁신이나 창조는 그 자체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활용가치, 즉 기반산업에 관한 인식 전환이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디지털 혁신, 디지털 창조와 아날로그 산업이 융합될 수 있도록 정부 인식과 정책이 요구되고 있다. 세계 전기산업은 신흥국 경제성장에 따른 전력인프라 확충과 선진국 노후 전력 기자재 교체 등으로 2035년까지 약 22조달러 규모의 투자가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발전기와 변압기, 개폐기, 차단기, 전선 등을 생산하는 우리나라 전기산업은 ‘사양산업’이나 ‘아날로그 산업’ 정도로 인식되고 있다. 우수한 젊은이가 취업을 꺼리고 외국 근로자가 빈자리를 채우는 등 활력을 잃어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최근 전기기기는 IT와 결합해 더욱 지능화되고 기후변화와 에너지 위기 등에 대응해 친환경, 고효율, 초고압 등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전기기기는 안전사고 발생 시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고 있어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예방진단·원격 모니터링과 같은 기능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새로운 기술 트렌드에 적극 대응하기 위해 과감한 연구개발 투자로 신제품을 개발하고, 세계시장을 선점해야 한다. 그간 전통적인 아날로그 산업으로 간주돼 왔던 전기산업을 ‘2020년 세계 5대 강국’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도록 정부의 과감한 R&D 투자와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다각적인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다.

어느새 낮 최고 기온이 30도를 넘나드는 여름이다. 이번 여름에도 무더위와 한판 싸움을 해야 할 듯하다. 더위를 식혀주는 그늘 뒤에는 숲을 이루는 나무가 있다. 나무의 근간은 뿌리라는 점을 누구나 잘 안다. 보이지 않는 땅속에서 뿌리가 나무를 튼튼하게 지탱해 줘야 그늘도 만들고 열매도 맺는다.

전기기기와 같은 전통 기간산업군은 대다수가 이른바 뿌리에 해당한다. 뿌리가 튼튼해야 나무도 잘 자라게 마련이다. 정부가 혁신적·창조적 분야는 물론이고 뿌리 쪽도 챙겨야만 균형적인 성장을 이루는 국가가 될 수 있다.

장세창 한국전기산업진흥회장 koema@koema.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