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알츠하이머 기억 장애 원인 최초 규명

알츠하이머 환자의 기억 장애 원인이 최초로 규명됐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약물 후보까지 제시돼 알츠하이머를 비롯한 퇴행성 기억 장애를 막을 수 있는 가능성이 열렸다.

국내서 알츠하이머 기억 장애 원인 최초 규명

이창준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원장 이병권) 뇌과학연구소 박사팀은 뇌 속 반응성 별세포(성상교세포)에서 나오는 억제성 신경전달물질 ‘가바(GABA)’가 기억 장애를 일으키는 것을 확인했다고 30일 밝혔다.

반응성 별세포는 신경세포가 아닌 아교세포 중 하나로 알츠하이머 환자의 뇌에서 흔히 발견된다. 세포에 도파민 산화 효소인 ‘마오-B’가 작용하면 가바가 생성되고, 이 물질이 신경세포의 정상적인 신호 전달을 방해하게 된다. 신경세포가 살아 있더라도 정상적인 기억 활동이 이뤄지지 않는다.

연구진은 실험쥐에 마오-B 억제제를 투여해 기억 상실을 막는 방법도 연구했다. 알츠하이머 생쥐에 임상 단계 약물 ‘사피나마이드’를 투여하자 뇌 신경세포 발화력이 회복됐다. 행동 실험에서도 전기 충격 기억이 되살아났다.

현재 파킨슨병 치료 보조제로 사용 중인 ‘셀리길린’도 효과가 있었지만 복용 기간이 늘어날수록 효과가 떨어졌다. 연구진은 이 약물이 사피나마이드와 달리 마오-B를 완전히 파괴해 되돌릴 수 없게 만든다는 점에 주목, 사피나마이드 같은 가역성 마오-B 억제제 개발에 집중할 계획이다. 현재 세 개 물질을 대상으로 후속 연구가 진행 중이다.

연구는 우리 뇌 세포 90% 이상이 신경세포가 아닌 아교세포라는 사실에서 출발했다. 기존 알츠하이머 연구는 기억 장애 원인을 신경세포 사멸로 보고 이를 억제하는 데 집중했다. 그러나 이 가설로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기억이 오락가락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없다. 신경세포 사멸만이 원인이라면 가끔 되살아나는 기억을 설명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연구진은 살아있는 신경세포에서도 기억 활동이 정상적으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있다고 보고, 아교세포 역할을 규명했다. 결국 아교세포에서 나오는 가바가 신경세포 활동을 방해한다는 사실이 입증돼 기억 장애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같은 원리를 파킨슨병 등 다른 기억 장애 질환에도 적용하는 후속 연구가 이어질 예정이다.

반면 신경세포가 살아 있는 상황을 가정했기 때문에 신경세포 파괴로 인한 기억 상실은 막을 수 없다. 신경세포 자체가 많이 손상된 환자에게는 효과가 없는 셈이다. 지속적으로 약물을 투여한 실험 결과이기 때문에 1회 투여로 인한 지속 시간이나 적정 투여 기간 등도 알 수 없다.

이 박사는 “알츠하이머 발병 시 기억력이 감퇴되는 원인을 규명했다”며 “장기 복용 시에도 약효가 지속되는 신약 개발 토대를 마련했다”고 자평했다.

연구는 미래창조과학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세계수준연구센터(WCI) 사업과 뇌과학연구소 플래그십 과제 일환으로 수행됐다. 연구 결과는 네이처메디슨 최신호(6월 30일자)에 소개됐다.

송준영기자 songjy@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