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포럼]美 불공정경쟁법이 주는 위기와 기회

[미래포럼]美 불공정경쟁법이 주는 위기와 기회

지난해 우리나라의 불법 소프트웨어(SW) 사용률(38%)이 사상 최저를 기록했다는 소프트웨어연합(BSA)의 최근 발표가 있었다. 처음 조사가 이뤄진 10년 전에 비해 10%포인트가 줄어든 수치다. 무엇보다 처음으로 30%대로 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불법SW 사용률의 세계 평균과 아시아 평균이 조금씩 올라가고 있는 현실에 비춰볼 때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물론 OECD 주요 국가 평균(25%)에 비하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점진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징후만은 분명하다.

불법SW 사용률을 낮추는 일은 지식재산권의 울타리를 지켜야 한다는 것, 더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는 당위론으로 설명된다. 그뿐만 아니라 점점 정교해지고 강력해지는 국제 제재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점에서도 유효하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새롭게 주목해야 할 것은 미국 36개 주가 채택하고 있는 불공정경쟁법(UCA:Unfair Competition Act)이다. 불법SW를 쓰는 기업이 만든 제품을 미국 내에서 판매금지할 수 있는 내용이 뼈대다. 2010년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처음 도입한 이 법은 불법SW 사용으로 부당하게 원가를 낮춘 타국 제품이 미국시장을 교란시키도록 내버려 두지 않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로서는 자칫 큰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제재다. SW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의 횡포로 볼 수도 있지만, 우리로서는 후발경쟁국과의 차별화를 시도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대미(對美) 수출 기업은 1만9000여개, 전체 민간기업의 약 22%에 달한다. BSA의 발표내용을 산술적으로 적용하면 이 기업 10곳 중 4곳이 무역제재 위험군에 속해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에서는 불공정경쟁법(UCA)을 적용한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중국의 유명 바비큐 그릴 제조업체 칸보(Canbo)사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 루이지애나주 검찰은 칸보사가 수년간 불법 SW를 사용한 사실이 적발됐다며 지난 3월 이 회사 제품을 수입 중단하겠다고 경고했다. 칸보사는 문제가 된 SW를 25만달러를 들여 100% 정품화하기로 하고 1년 뒤에는 감사까지 받기로 하는 등 백기투항했다.

또 지난해 인도의 한 의료제조사가 로스앤젤레스 검찰에 의해 제소되기도 했다. 이 회사가 의류를 유통하는 과정에서 어도비, 시만텍, 마이크로소프트의 SW를 불법으로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에 해산물을 수출하는 태국기업 ‘나롱 시푸드 컴퍼니’도 매사추세츠 정부로부터 벌금을 부과받았다.

미국 불공정경쟁법이 위협적인 것은 책임을 묻는 범위가 매우 넓다는 데 있다. 즉 납품업체들이 부품 생산과정에 불법SW를 사용했다면, 최종 수출업체가 설사 이를 몰랐다 하더라도 결코 면책되지 않는다. 불법SW를 사용한 사실이 적발되면 실제 손해액 또는 불법사용 IT 제품의 소매가격 이상의 벌금형을 부과한다. 제품 판매를 아예 금지할 수도 있다.

제품생산을 위해 수십개 혹은 수천개의 납품업체들과 공급계약을 하는 대미 수출업체들로서는 ‘불량률’뿐 아니라 ‘불법률’ 제로(0)까지 지켜야 하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우리나라는 전자·자동차 기업이 첫 타깃이 되기 쉽다.

그러나 사전 예방 조치만 제대로 한다면 우려할 문제는 아니다. 지난해초 도요타는 협력업체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아 불공정경쟁법에 관한 설명회를 열었다. 부품 조달과정에서 혹시 있을지 모를 문제점을 차단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불법SW 사용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나라도 최근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한 움직임들이 부쩍 눈에 띈다. 중국은 지난해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의 정품SW 사용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대대적인 조사를 벌었다. 필리핀은 SW 저작권 침해에 반대하는 전 국민적인 캠페인을 금융 허브인 마카티 시티를 중심으로 대대적으로 진행하기도 했다.

전 세계적으로 불법SW 사용으로 인한 피해가 연 630억달러에 이른다는 보고가 있다. 우리나라도 그 규모가 7억1200만달러(약 7200억원)로 추산된다.

불법SW 사용을 근절하는 것은 국가 이미지 실추를 막는다는 소극적 차원의 의미에만 머무르지 않는다. 우리는 이를 새로운 성장동력을 키우기 위한 땅고르기 작업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미국의 불공정경쟁법 같은 것은 우리에게 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김영훈 한국마이크로소프트 법무정책실 상무 younkim@microsoft.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