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바이오]‘대면과 화상의 차이는?’ 규제에 막힌 원격화상 투약기

3R코리아가 ‘원격화상투약기’를 구상하기 시작한 건 5년 전이었다. 심야시간이나 공휴일 등 약국이 문을 닫으면 소비자들은 꼼짝없이 불편을 겪게 되는데, 이를 해소할 방법에 대한 고민이 깊었다.

원격화상투약기 시연 모습.
원격화상투약기 시연 모습.

그러던 중 회사는 IT에서 가능성을 엿봤다. 약국이 문을 닫더라도 약사가 복용 지도를 할 수 있고, 소비자에게 적합한 의약품을 전달하는 시스템을 갖춘다면 취약 시간대의 공백을 충분히 메울 수 있을 것으로 판단돼서다.

3R코리아는 이 때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뛰어들었다. 중소기업이지만 2년여 동안 투자를 아끼지 않은 덕에 지난 2012년 원격화상투약기를 상용화하는데 성공했다.

이 기기는 약국의 개념을 흡수하면서도 기존 인식과 체계를 뒤집는 사례였다. 50여종의 일반 의약품을 기기 내 비치한 뒤 소비자가 통화 버튼을 누르면 콜센터 등 원격지에서 근무하는 약사가 모니터에 나타나 복약을 상담하고 필요한 의약품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원격화상투약기의 골자다. 약사와 소비자간 직접 ‘대면’해 이뤄지던 일을 ‘영상’과 ‘원격’을 중심으로 시스템화한 셈이다. 또 약국에서 약을 구매하는 과정처럼 소비자가 직접 의약품을 선택할 수 없고 약사의 관리 하에 통제되는 것이 핵심이다. 한기현 3R코리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 약사의 복용 지도를 반드시 받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원격화상투약기는 단숨에 주목을 받았다. 환자와 직접 대면하지 않아 상담과 복약지도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 반면 의약품에 대한 접근성 강화 차원에서 부정적으로 볼 수 없다는 의견도 팽팽히 맞섰다. 실제로 일부 지역약사회는 원격화상투약기의 가능성을 엿보고 시범 운영하기로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기도 했다. 시범사업은 직능을 훼손한다는 약사들의 반발로 중도에 무산됐지만 원격화상투약기의 가능성만큼은 인정받은 셈이다.

그러나 이 새로운 기술은 시장에서 평가와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기도 전에 정부의 유권해석에 가로 막혀 빛도 보지 못할 위기에 처했다. 보건복지부는 원격화상투약기가 보건의료분야에서 ICT를 접목한 ‘획기적인 아이디어’로 평가하면서도 현행법상 약사와 의약품 전달 모두 동일한 약국 내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원격화상투약기를 통한 의약품 판매 불가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한기현 CTO는 “사회적 편의를 지향하면서 산업 발전을 모색할 수 있는 기술에 대한 평가의 기회를 원천 차단하는 것은 창조 경제 시대에 맞지 않는다”면서 “보건 분야에서도 ICT 에 대한 전향적인 정책과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윤건일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