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으로 빈번하게 발생하는 재해, 테러, 사고 등으로 사회 안전(Societal Security)은 크게 위협받고 있다. 2001년 미국에서 911테러로 3000여명의 인명피해, 2004년 서남아시아에서 발생한 지진해일로 14개국 약 23만명의 사망·실종이 발생한 사건들은 사회 안전에 대한 경종을 울렸다.
이에 따라 국제사회는 사회 안전에 관한 체계적 대응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사회 안전 시스템 표준화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특히 2011년 일본에서 발생한 쓰나미는 2만여명의 인명 피해와 함께 원전 사고까지 야기해 재난에 대한 국가적 대응뿐 아니라 국제공조의 필요성도 제기됐다.
2012년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정한 표준(ISO 22300)에 사회 안전이란 의도적이거나 비의도적인 인간 행동, 자연적 위험요인, 기술적 문제로 인한 사고 및 기타 긴급사태 등에 따른 재난으로부터의 보호와 대응으로 정의돼 있다. 따라서 사회 안전 표준은 사고발생 시 지속적인 업무추진을 위한 관리시스템, 긴급사태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요구사항 등이 포함된다. 이들 표준은 우리 사회를 구성하는 조직 전반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제품 표준과는 달리 국가별·조직별 특성을 반영하고 자발적 이행이 확산될 수 있도록 대부분 지침서 형태로 만들어지고 있다.
ISO가 사회 안전 분야에 관한 국제표준화를 본격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한 2006년에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참가국이 18개국에 불과했으나 2014년에는 47개국으로 크게 증가했다. 특히 사회 안전에 취약한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 개도국의 참여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은 사회 안전 시스템 표준화 필요성 인식이 점차 확산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나 국제적으로도 사회 안전 분야 표준화는 아직 시작 단계다. 현재 관련 국제표준은 사회 안전 기본개념, 사고대응을 위한 요구사항 등에 관한 6종의 표준이 제정됐으며 비상탈출 가이드, 비상사태 대응능력 평가 등 사회 안전 관리에 관한 10여종의 국제표준이 개발 중에 있다.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관련 부처와 민간전문가 등이 협력해 사회 안전 분야 국제표준화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아울러 한·중·일 3개국 간 사회 안전 표준의 도입·확산과 정보교환을 위한 별도의 협력채널을 마련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
최근 우리나라도 세월호 사건과 같은 국내에서 발생한 일련의 안전사고나 예기치 못한 재난으로부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한 국가 차원의 효과적인 대비책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미국, 유럽 등의 선진국은 각종 재난 등에 대한 국제공조뿐 아니라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련 조직 간 유기적인 협업과 효율적인 대응 등을 위해 사회 안전 시스템 표준을 활용하고 있다. 아울러 체계적인 사회 안전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 국제표준과 기존의 운영 시스템을 비교해 보완하는 노력도 병행하고 있다.
토영삼굴(兎營三窟)이란 말이 있다. 토끼가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세 개의 굴을 파놓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토끼의 지혜를 단순히 자연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동물적 본능으로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각종 위험에 빠지기 전에 미리 예측하고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준비태세를 갖춰야만 뜻하지 않은 불행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우리도 각종 재난이나 사고가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나, 재난에 대비해 미리 준비하고 신속히 대응할 수 있는 사회 안전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위한 기본 지침서로 국제적으로 합의되고 검증된 사회 안전 표준이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관련부처와 전문가들의 지혜를 모아 비상시 효과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사회 안전 표준을 제정·보급해 우리나라 사회 전반의 안전 시스템 수준이 한층 높아지기를 기대해 본다.
성시헌 국가기술표준원장 seong@motie.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