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가운데 독특한 모양의 30층 건물이 들어선다. 투명하지만 세척을 하지 않아도 말끔하게 유지되며, 기존 판유리보다 강하면서도 무게는 50분의 1에 불과한 에틸렌-테트라플루오로에틸렌(ETFE)이라고 하는 특수 플라스틱으로 외면을 두른 대규모 작물재배용 빌딩이다.
수직농장(vertical farm)이라 불리는 이 건물은 지표면에서 2차원적으로 짓던 농사를 고층 아파트와 같은 빌딩에서 3차원으로 구현하기 위한 시설이다.
계절과 상관없이 인위적으로 조성된 환경에서 연중 작물을 재배함으로써 생산성이 기존 농법에 비해 면적대비 평균 10배 이상 향상돼 30층 건물에서 연간 5만명에게 필요한 식량을 공급할 수 있다.
농사에 필요한 물은 도시에서 나오는 하수를 거른 중수를 이용하며 필요한 물의 양도 기존의 30% 정도면 충분하다. 식물에서 뿜어 나오는 수증기는 밀폐된 빌딩공간에서 포집하면 생수로 이용할 수 있다. 미국 컬럼비아대 딕슨 데포미에 교수가 주창한 수직농장의 모습이다.
지구상 농지를 모두 모으면 남아메리카 크기가 된다. 현재 70억명 세계 인구에게 공급할 식량생산에 필요한 면적이다. 오는 2050년 95억명 인구를 먹여 살리려면 브라질 크기 만한 농지가 더 필요하게 된다. 작물을 개량해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키지 못한다면 농지를 수직으로 확장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수직농장용 30층 건물 1000동을 건립하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된다. 기존 농지는 적절하게 보전하면 DMZ에서 만나게 되는 자연공원이 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새 국가비전으로 인류의 화성거주계획을 발표했다. 인간이 달이든 화성이든 외계에서 장기간 거주하려면 우주농장을 세우지 않을 수 없다. 작물재배를 통해 필요한 산소와 식량을 동시에 공급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멀게만 느껴지던 우주시대가 갑자기 앞당겨진 느낌이다.
바야흐로 우주농장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거창하게 들리는 우주농장도 실상 수직농장의 연장일 수밖에 없다. 우주의 한 공간에 세워지는 농장인 만큼 지구상의 수직농장에서는 염려하지 않아도 되는 중력이나 대기권 부재로 걸러지지 않고 우주공간에서 유입되는 치명적인 방사선 등을 추가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것뿐이다.
수직농장이 일반인에게 다소 생소한 용어지만 식물공장이란 말은 이미 일반화된 것 같다. 수직농장은 도시에 세워지는 대단위 건축물로서 랜드마크를 목표로 하는 것인데 반해 식물공장은 소규모의 작물재배장치이다. 대형 마트 매장에 식물공장이 선보인지 수년이 지났으며, 가내 식물공장 키트도 어렵지 않게 구매할 수 있다.
조만간 본격적인 식물공장에서 재배된 무공해 채소가 장바구니에 낯설지 않게 담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식물공장이 우주농장으로 연장된다고 생각하면 문제를 지나치게 단순화한 측면이 있다.
식물공장은 손에 잡히는 것 같고 우주농장은 전혀 실감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의미 있는 중간지점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사막에서 사용할 수 있는 최첨단작물재배장치를 중간지점으로 삼으면 어떨까?
태양에너지와 공기 중 물을 포집해 사용함으로써 외부에서 별도의 에너지와 물을 공급하지 않아도 되며, 전 자동화로 수작업을 필요로 하지 않으면서도 아이패드 수준의 사용자 편의성을 갖춘 장치를 개발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장치 1000대를 20명 정도의 인력으로 관리할 수 있게 한다면 이는 분명 오일머니를 대거 획득할 수 있는 차세대 성장 동력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첨단기술을 외면한 채 영세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하우스 재배가 우리 농업의 주요수단이 되고 있는 현실을 타파하려면 융·복합기술을 접목함으로써 우리 농업이 하루 속히 6차 농업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기존의 ‘그린 플랜테이션’ 방식이 아닌 최첨단기술로 지구상의 어느 지점에서도 작물재배를 가능케 하는 ‘블루 플랜테이션’에서 기술경쟁에 앞선다면 중동국가를 상대로 원자로에 버금하는 오일머니를 겨냥한 수출산업을 일으키는 것도 가능하지 않겠는가?
뿐만 아니라 우주시대에 펼쳐질 우주농장 산업에서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장렬 한국생명공학연구원 명예연구원(jrliu@kribb.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