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26>음성 시뮬레이션

죽은 자의 목소리를 재생해낼 수 있을까? 1912년 독일의 여류 소설가 살로모 프리드렌더(Salomo Friedlaender)의 단편소설 ‘괴테가 녹음기에 말하다’는 죽은 괴테의 목소리를 살려내는 정신생리학 교수이자 최면술사의 이야기를 가상적으로 그려낸다.

괴테하우스의 방. 프쇼르 교수는 괴테 형상을 매개로 녹음된 괴테의 목소리를 연인 폼케에게 들려준다.
괴테하우스의 방. 프쇼르 교수는 괴테 형상을 매개로 녹음된 괴테의 목소리를 연인 폼케에게 들려준다.

프쇼르라는 교수는 사랑하는 여인 폼케가 이미 죽은 괴테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갈망하는 모습을 보고 그 여인을 위해 괴테가 살아서 이야기하는 것과 똑같은 목소리를 들려주기로 한다.

괴테의 목소리를 녹음해두었다면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겠지만 당시는 녹음기가 발명되기 이전이었다. 괴테가 죽은 후 45년이 지나서야 프랑스의 크로(Cros)와 미국의 에디슨(Edison)에 의해 축음기가 발명됐다.

프쇼르는 목소리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소리를 내는 기관인 후두, 성대, 폐 등을 그대로 시뮬레이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전시된 괴테의 흉상을 관찰했지만 흉상은 디테일 측면에서 만족스럽지 못했다.

고심 끝에 그는 괴테 시신을 직접 보고 발성 기관을 모사해오기로 결심한다. 그는 한 밤중에 괴테가 묻혀있는 바이마르 왕립묘역에 있는 괴테의 석관을 열고 괴테의 시신을 특수처리한 후 주형을 떠온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시뮬레이션된 발성기관을 토르소 형태의 형상으로 구현한다. 그는 괴테의 작품을 자신이 읽고 그 소리가 재생된 발성기관을 통과해 축음기에 녹음되도록 한다. 그는 완벽하게 괴테의 목소리를 재생할 수 있었다.

프쇼르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괴테가 실제로 강연을 하던 공간, 즉 괴테하우스에서 이를 들려주기로 한다. 그는 괴테 토르소를 과거 괴테 자리에 놓고 그 뒤에 축음기를 감춘 후 그 앞자리에 여인 폼케를 앉도록 한다.

괴테가 이야기하던 곳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은 폼케는 괴테의 실제 목소리를 들으며 감격해 마지않는다. 목소리 자체는 물론이고 공간내 소리의 울림까지도 완벽하게 구현한 것이다. 폼케가 감격한 이유는 녹음물처럼 과거 목소리를 재생하는데 그치지 않고 괴테를 ‘지금 여기(here-now)’에 불러냈기 때문이다.

음성 합성 또는 시뮬레이션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지금 이 소설 속의 교수처럼 죽은 자의 목소리를 재생해낼 수 있을까?

시리(Siri)와 같은 스마트폰용 음성 합성이나 내비게이션의 안내 목소리에서 우리는 흔히 합성된 음성을 듣지만 이는 녹음된 실제 사람의 목소리는 아니다.

오디오북은 기계적인 음성 합성이나 실제 성우의 녹음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라이언킹’과 같은 애니메이션 영화의 캐릭터 대사는 유명 영화배우가 녹음한다. 영화 ‘그녀(Her)’에 등장하는 인공지능 사만다의 목소리는 스칼렛 요한슨의 것이다. 한 사람의 목소리를 완벽하게 재생하기 위해서는 음색, 높이, 크기 등 소리의 요소들을 완벽하게 재현해야 한다. 현재 기술로는 어렵지만 머지않은 미래에 특정인의 목소리를 그대로 시뮬레이션해낼 수 있을 것이다.

소리는 그림이나 사진과 달리 깊은 감성을 전한다. 마샬 맥루한의 말대로, 소리 매체는 부족의 북과 같이 우리 심금을 울린다. 영화 ‘그녀’의 인공지능이 사만다라는 가상의 인물이 아닌 죽은 연인의 목소리를 시뮬레이션해 그녀를 ‘지금 여기’에 불러낼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괴테의 목소리만 들었던 폼케처럼 감격해 마지않을 것인가, 아니면, 사만다처럼 목소리에 만족치 않고 육체적 만남까지 갈망할 것인가?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