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 채무유예가 내일 끝난다. 이동통신사가 채권단 출자전환에 참여하지 않으면 법정관리행이다. 비겁하다. 채권단 말이다. 출자전환 결정에 이통사 참여를 조건으로 걸었다. 정상화 의지가 있다면 먼저 출자전환을 하거나 다른 대안을 제시해야 옳았다. 공과 함께 책임을 떠넘기려는 꼼수로 읽힌다.
이통사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몇 조원을 마케팅 비용으로 쓰면서 고작 1800억원 때문에 좌초를 방치했다는 비난을 걱정한다. 휴대폰 유통업체까지 나선 마당이라 더욱 그렇다. 이통사가 출자전환을 꺼리는 이유가 불투명한 독자생존만이 아니다. 추가투자 가능성도 있다. 손해를 보더라도 지금 발을 빼는 것이 합리적 경영판단임에 틀림없다.
정말 팬택은 이쯤에서 손을 놔야 할 기업인가. 벤처성공신화, 동정론과 같이 감성적 접근은 빼자. 오로지 이 회사 경쟁력과 미래가치만 보자. 신제품 ‘베가 아이언2’만 보면 여전히 가치있는 기업이다. 메탈 디자인, 완성도, 가격 모두 좋은 평가를 얻었다. 하필 이 제품을 내놨을 때 이동통신사가 영업정지를 당했고 보조금 시장이 경쟁사에 쏠렸다. 같은 조건이라면 팬택 상황도 확 달라졌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팬택이 법정관리를 피해도 앞으로 삼성, LG와 똑같은 전략을 고수한다면 미래가 없다는 점이다. 3등까지 챙겨주는 스마트폰시장이 아니다. 팬택은 운용체계(OS)부터 제품과 시장 전략까지 온통 달리 가야 한다. 중국 샤오미로부터 배울 것이 많다. 애플 짝퉁이라는 비웃음을 받으면서 중국시장에서 애플을 제친 고작 네 살짜리 스마트폰업체 말이다.
샤오미 돌풍이 중국을 넘어 다른 나라로 번졌다. 핵심은 차별화다. 가격뿐만 아니라 제품, 마케팅까지 독창적이다. 독자 OS와 사용자인터페이스(UI), 서비스로 아이폰, 안드로이드폰과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 온라인, 특히 소셜마케팅으로 비용을 거의 쓰지 않으면서 점유율을 높였다. 사용자와 적극 교감해 애플이나 가능한 마니아층도 형성했다.
한국 시장이 중국처럼 크지 않다. 유통구조도 딴판이다. 팬택이 한국시장에서 샤오미처럼 되려야 될 수 없다. 하지만 차별화는 따라할 만하다. 당장 구글 안드로이드 OS부터 버릴 일이다.
‘안드로이드오픈소스프로젝트(AOSP)’라는 좋은 대안이 있다. 안드로이드 변종이지만 구글 서비스를 강제로 넣지 않아 소비자 반응이 좋다. 아마존에 노키아까지 가세하면서 세력을 불린다. 구글 앱 생태계를 활용할 수 없는 것이 문제다. 그런데 구글 위세에 짓눌려 독자 앱과 서비스 생태계 방향타를 잃은 이통사, 콘텐츠사업자가 많다. 이들 힘을 빌리면 팬택이 안드로이드를 버리는 모험도 해볼 만하다는 이찬진 드림위즈 대표 의견에 공감한다. 결코 만용이 아니다.
보급 대중화로 스마트폰 시장이 프리미엄에서 중저가로 옮겨갔다. 팬택 제품력에 가격만 더 파격적으로 낮출 수 있다면 해외 시장에서 충분히 승산이 있다.
물론 당장 부도 위기인 기업에 할 주문들은 아니다. 다만 팬택에 다시 한번 기회를 준다면 과거와 분명 다른 이유여야 한다는 얘기다.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남을 수 있는 한국 스마트폰 산업이다. 이를 타개할 새로운 도전과 혁신이 절실하다. 어쩌면 기득권까지 과감히 버리는 모험이 길이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는 팬택이라면 그 전면에 내세울 가치가 있다. 지원도 딱 한번이면 족하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