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우리나라에서 열린 ‘유엔공공행정포럼’ 기간에 ‘2014년 유엔(UN) 전자정부 평가’ 결과가 발표됐다. 우리나라가 3회 연속 세계 1등을 했다는 소식을 접한 125개국 1400여명의 각국 대표들은 높은 관심과 찬사를 보냈다. 동시에 어떻게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지 경험을 전수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개발도상국은 물론이고 선진국과 국제기구 관계자들도 한결같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이 원하는 것이 정보통신기술보다는 한국 공무원들의 행정혁신 경험이라는 점이다. 예컨대 한국에서는 민원인이 동의하면 구비서류를 굳이 제출하지 않아도 행정기관이 열람해 업무를 처리하도록 행정정보공동이용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위해 어떤 법령을 마련했으며 초기 반대와 저항을 어떻게 극복했는지, 또 시스템 구축을 위해 필요한 전문기술자와는 어떻게 협력하는지 등을 알고 싶어 했다.
그간 경험에 비춰볼 때 행정혁신이 전제되지 않은 정보화는 ‘정보화를 위한 정보화’에 그치기 쉽다. 정보화를 수반하지 않는 혁신 역시 일회성 행사로 실패하는 사례가 많다. 그래서 정보화는 행정혁신의 중요한 수단인 동시에 혁신의 성과물로 표현되곤 한다. 사실 대규모 전자정부시스템에 투입된 전산장비나 상용 소프트웨어(SW)들은 다국적기업 제품들이 많다. 어느 나라나 자국에서도 이들 물품의 조달이 가능하다. 결국 우리가 수출할 수 있는 차별화된 상품은 정보통신기술을 활용한 행정혁신 경험과 노하우다.
공공행정포럼 행사에 참가한 어느 국제기구 관계자가 이런 말을 했다. “전 세계가 한국에 협력을 요청하는 지금이 좋은 기회다. 우리는 원조자금도 충분히 가지고 있다. 필요한 것은 정보화를 활용해 행정혁신을 직접 수행한 한국 공무원들이다. 기회를 활용할 수 있고 없고는 한국의 선택에 달렸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그들은 자신들이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동안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전자정부사업을 담당해 온 실무자들이야말로 오늘날 우리나라 전자정부 3회 연속 세계 1등을 낳게 한 일등공신들이다. 혁신이 필요한 업무가 어떤 것인지를 아는 동시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기술을 활용해야 하는지 가장 잘 아는 전문가들이다. 이들에게 해외협력 기회와 역할이 보다 많이 부여돼야 한다. 세계는 다름 아닌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전자정부 수출전략은 대기업, 중소기업, 공무원 구분할 것 없이 주요 전자정부시스템 구축에 헌신했던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경험과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이들에게 해외협력의 역할이 충분히 제공되고 있는가? 전자정부 협력 요청이 세계 각국으로부터 쇄도함에도 수출이라는 단어에 집착해 행정개혁에 대한 고민 없이 SW기업의 해외 진출 관점에서만 접근하는 것은 아닌가? 국제협력 관련 국내외 전문기관들은 충분히 협력하고 정보나 자원을 공유하고 있는가? 대기업·중소기업을 구분하느라 해외시장 확대의 기회를 우리 스스로 놓치는 것은 아닌가?’하는 생각에 이르면 마음이 밝지만은 않다.
“세계가 협력을 요청하는 지금이야말로 한국 전자정부를 세계에 확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이런 기회가 언제까지 계속된다는 보장이 없다. 해외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경험 확산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는 국제기구 관계자의 말이 오랫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박제국 안전행정부 전자정부국장 jeguk@korea.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