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과 ‘병’마저 부러운 부품업계
최근 국내 부품업체 A사 사장은 대기업과의 ‘갑을병정’ 관계를 두고 자조 섞인 농담을 던졌습니다. 소모품에 해당하는 부품 업체는 갑을병정 하고도 한참 뒤인 무기경 ‘신’에 속한다는 얘기였습니다. 반드시 필요한 부품인데도, 언제든 쓰다 버릴 수 있다는 인식 때문에 부품업체는 진정한 협력사로 대우받기 힘들다고 합니다. A사 사장은 독일의 부품업체 ‘보쉬’ 같은 ‘을’이 되는 게 소원이라고 합니다. 부품업체 중 가장 큰 매출을 기록하고 있는 보쉬는 특히 자동차 산업에서 절대적 존재입니다. 전 세계에서 팔리는 모든 차에 적어도 한 개 이상의 부품은 보쉬 제품이죠. 이미 자동차 산업 권력의 추는 보쉬와 같은 대형 부품업체로 기울었습니다. 우리나라 자동차 업체들도 부품업체인 보쉬를 하청업체로 생각지 않죠. 국내 많은 부품업체도 보쉬와 같이 세계 일류 업체로 도약해서 ‘갑’ 같은 ‘을’ 대접을 받을 수 있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참을 인’자 세 개라야 일류 소재가 나온다.
독일·일본·미국을 3대 소재 강국으로 꼽습니다. 공통점이 있습니다. 연구개발(R&D)이 꾸준하게 이뤄지는 곳이지요. 전쟁을 일으켜 본 나라라는 것도 닮은 점입니다. 무기를 만들면서 기초 소재와 과학이 얼마나 중요한지 일찌감치 깨달은 것입니다. 이들 3개국 기업에 대표적인 제품을 개발하는 데 얼마가 걸렸냐고 물어보면 “30년 또는 40년”이라는 대답이 바로 나옵니다. 우리나라 제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소재 강국이 되어야 한다는 구호가 심심치 않게 들려옵니다. 하지만 눈앞의 실적에 급급한 한국 기업 문화에 소재 사업은 어렵기만 합니다. 회사 경영진들은 왜 연구 성과물이 안 나오냐며 하루가 멀다하고 압박을 주기도 합니다. 이래서는 소재 사업을 할 수 없습니다. 참고 기다릴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대기업 출신 OB들, “제 살길만 찾는 후배들아! 우리 때는 안 그랬다”
지금은 중소기업에서 일하거나 창업한 대기업 출신 OB들. 모였다 하면 후배에 대한 탄식이 저절로 나온다고요. 단순히 ‘요즘 애들은…’ 식의 흉보기가 아닙니다. 후배들이 제 살길만 찾느라 주위는 신경도 쓰지 않아 친정 이미지를 망치고 있다는 건데요. 협력사를 대하는 자세가 대표적입니다. 예전엔 협력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는 공감대가 있어 개발자금 지원, 공동 프로젝트 등이 별 문제없이 진행됐답니다. 허나 기업 분위기가 오로지 단기 성과 위주로 변하면서 후배들도 점차 바뀌었다고 하네요. 그나마 괜찮은 마인드를 지닌 후배들은 제 발로 나오거나 대부분 해고됐답니다. 어쩌면 그 기업에서 혁신을 찾기 힘든 이유가 여기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성공은 조직을 보수적으로 만들고, 실패는 조직을 혁신적으로 만든다.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 동안 삼성전자는 세계 스마트폰 시장에서 승승장구했죠. 반면에 LG전자는 제대로 된 메가히트 모델 하나 내놓지 못하면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최근 들어 두 회사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 듯합니다. 삼성전자는 어느 새 성공에 도취돼 소비자의 혁신 요구에 둔감해졌습니다. 2분기 실적이 사실을 반증합니다. LG전자는 절치부심 끝에 스마트폰 ‘G3’를 내놓으면서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LG전자 G3는 국내외에서 삼성전자 갤럭시S5보다 훨씬 뛰어난 제품이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이재용 체제 속에서 삼성전자가 다시 혁신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입니다.
○…“삼성만 고집하는 데 별도리가 없어요.”
손꼽히는 명문대에서 반도체를 가르치는 B교수는 학생들의 ‘뻔한’ 진로 때문에 고민이 많습니다. 남이 들으면 배부른 소리한다고 하겠지만 대학원을 마치고 취업하는 제자들이 죄다 삼성전자를 선호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SK그룹 편입후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SK하이닉스에 가는 것도 고민할 정도니 중소기업 얘기는 꺼내기도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도 우수 인재가 반도체 업계 전반에 퍼져야 한다는 생각에 중소기업 취업을 권유해보지만 “결혼하려면 대기업에 가야 한다”는 답에 말문이 막힙니다. 산업 생태계를 바꿔야 하는 건지, 결혼문화를 바꿔야 하는 건지 다 함께 답을 찾아야겠습니다.
매주 금요일, ‘소재부품가 뒷이야기’를 통해 소재부품가 인사들의 현황부터 화제가 되는 사건의 배경까지 속속들이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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