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년 전 전통 아기포대기에 벨크로(일명 찍찍이)를 부착해 개량 발명을 한 이 모씨. 남편에게 보여줬는데 반응이 영 시원찮았다. 아기를 업어 본 적 없는 남자로서 포대기라는 품목부터가 그리 와닿지 않았을 것이다. 미적지근한 반응에 주저했지만 용기를 내보기로 했다. 실용신안을 출원하고 시장에 내 놓으니 젊은 엄마들로부터 호응이 뜨거웠다. 기존 포대기로는 아기를 혼자 업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여성 발명은 생활밀착형 아이디어에서 시작한 것들이 많다. 생활 속 작은 불편이나 불합리한 것을 개선하려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비슷한 불편을 접해본 적 없는 사람은 이해하기 힘들 수 있다. 스팀청소기 개발로 성공한 한경희 한경희생활과학 대표 역시 엎드려 힘들게 걸레질을 하다 생각한 아이디어가 기업 창업으로 이어졌다.
누구나 쉽게 생활 속에서 접하는 아이디어이기 때문에 전문 연구나 첨단 기술 발명에 비해 별거 아니라는 취급을 받기 일쑤다. 그래서 여성 발명은 그 가치와 효용을 제대로 알아봐 줄 수 있는 평가자가 더욱 절실하다. 또 육아, 가사 등의 이유로 오랫동안 전업주부로 지낸 경력단절 여성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로 지식재산(IP)권을 획득하고 창업에 도전할 때 서류 작성, 공공기관 업무, 특허 출원 등 법적·행정적 처리에서도 큰 어려움을 느낀다.
여성 출원과 발명을 장려하기 위해 한국여성발명협회와 특허청은 지식재산권 교육부터 변리 상담, 경진대회, 시제품 제작지원, 여성발명품박람회, 세계여성발명대회 등 다양한 지원 사업을 추진해 왔다. 그 덕분에 2006년 4.4%에 불과하던 국내 여성발명가 특허출원은 2013년 기준 내국인 개인 출원의 14.6%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대한민국 여성 대졸자의 경제활동 참여비율은 62.4%로 OECD 평균 82.6%에 비해 훨씬 뒤떨어진다. 대학까지 졸업한 우수 여성 인재들이 결혼, 육아 등의 이유로 열명 중 네명 정도가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현실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발명으로 구체화하고 지식재산권으로 권리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를 바탕으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경제 활동 활성화는 사회적으로나 국가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올해 초 특허청은 생활 밀착형 기술 분야 심사를 담당하는 여성 심사관들이 여성들의 발명 멘토를 자청하는 위위클럽(WI-WE Club·Women Investor Women Examiner Club)을 발족했다. 법률과 전문적 지식이 풍부한 여성 심사관들이 여성 발명의 진면목을 알아봐주고 여성 특유의 섬세함으로 꼼꼼하게 멘토 역할을 해 준다면 지식재산권을 기반으로 시작하는 많은 여성들에게 든든한 지원군이 될 것이라는 취지다.
4월 시작된 ‘생활발명코리아(www.womanidea.net)’에는 식품, 주방기구, 완구 등의 분야에서 1536건의 생활 밀착형 아이디어가 답지했다. 접수된 아이디어에 대해 특허청 여성심사관과 변리사, 발명 강사 등이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선별된 우수 아이디어에 대해서는 지식재산권 교육, 출원, 멘토링, 디자인 개발, 시제품 제작 등 맞춤형 지원을 할 예정이다. 위위클럽 여성 심사관들은 아이디어 선정 뿐 아니라 교육, 멘토링 등에 적극 참여해 여성 발명인들의 IP창업을 이끌 안내자 역할을 담당한다. 현재 특허청 800여 명의 심사관 중 여성 심사관은 약 15% 정도에 불과하다. 이들은 현재 특허 심사만으로도 매우 벅찬 상황이라 여성들의 발명 멘토 역할까지 수행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국가지식재산위원회에 제출된 보고서에 따르면 특허청은 특허수수료 수입 외에도 해외 특허 조사기관 업무로 해외수입도 발생한다. 국민에 대한 조세부담 없이도 충분히 심사관을 확대할 수 있는 여력이 있다. 이런 특허청의 장점을 살려 우수 이공계 여성 인력을 특허심사관으로 채용해야 한다. 고급 일자리 창출에 기여함과 동시에 확충된 심사 인력이 여성들의 눈높이에 맞춰 발명을 평가하고 자문해 주는 선순환 지원체계를 갖출 필요가 있다. 창조경제시대를 맞아 여성 IP창업 활성화를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특허 심사에 부는 여풍이 아닐까 싶다.
조은경 한국여성발명협회 회장 kwia@inventor.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