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개 경제단체 "배출권거래제 2020년 이후로 연기해달라"

경제계가 내년 1월로 예정된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2020년 이후로 연기해달라고 촉구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23개 경제단체와 업종별 협회는 15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공동 기자회견을 열고, 배출권거래제 시행 시 산업경쟁력이 심각하게 저하될 수 있다며 제도 시행의 전면 재검토를 정부에 요청했다.

경제계는 배출권거래제 시행 시 2015∼2017년 3년간 최대 27조5000억원의 추가 비용부담이 발생할 것으로 추정되며 생산·고용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찬호 전경련 전무는 “배출권거래제는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상당한 만큼 시행에 앞서 정책 실효성과 현실 여건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국제 동향을 감안할 때 제도 시행을 2020년 이후로 연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계는 기후변화 대응은 전 세계가 함께 대응해야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안인데 이산화탄소 배출 상위국인 중국(배출비중 28.6%)과 미국(15.1%), 일본(3.8%) 등이 실시하지 않는 국가단위 배출권거래제를 배출비중 1.8%에 불과한 우리가 먼저 시행하는 것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경제계는 국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의 뚜렷한 산정 근거를 공개해달라는 요구도 했다. 배출권 거래비용이 기업 입장에서는 준조세 성격의 부담금이 되기 때문에 명확한 산출근거가 제시돼야 한다는 것이다.

박 전무는 “정부가 2009년과 2013년 두 차례에 걸쳐 배출전망치를 산정했으나 2013년 전망치는 외부에 발표하지 않고 있다”며 “많은 전문가가 경제지표, 에너지 설비 비중, 산업구조 등이 많이 변했음에도 2009년 산정된 배출전망치를 그대로 유지한 정부의 판단에 의문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온실가스 배출전망치를 과소 산정해 산업계가 져야할 부담을 축소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경제계는 또 세계가 본격적으로 온실가스 감축에 나서지 않고 있는 지금은 정부가 규제를 강화할 것이 아니라 신재생에너지와 친환경차, 이산화탄소 포집·저장기술 등 친환경 기술개발을 더 지원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이날 행사 이후에는 환경부와 기획재정부, 산업통상자원부 국장급 공무원과 경제계 간 비공개 간담회가 1시간 동안 진행됐다. 기업 부담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공감대가 있었지만 내년에 제도를 시행한다는 정부 기본 방침에는 큰 변화가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환경부 고위 관계자는 “제도 시행을 당초 2013년에서 2015년으로 한 차례 연기한 바 있고, 간접배출기준 완화, 업종별 감축량 축소 등 업계가 요구한 사안도 대거 수용했다”며 “제도 시행 일정을 다시 연기하거나 배출전망치를 재산정하자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날 경제계 건의에는 전경련과 대한상공회의소·무역협회·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는 물론이고 전자정보통신산업진흥회·반도체산업협회·디스플레이산업협회·통신사업자협회·자동차산업협회·기계산업진흥회 등 업종별 단체가 대거 참여했다.

김승규기자 seun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