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박근혜 대통령이 방문한 독일 드레스덴은 유럽 최대, 세계 5위 반도체 집적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시설물 상당 부분이 파괴되고 난개발로 시름하던 드레스덴이 독일 통일 후 불과 20여년 만에 대표적 산업집적지로 성장한 것이다. 이는 독일식 히든챔피언 육성에 적극 나섰던 연방정부와 작센 주정부가 반도체, 나노 등 특정 산업분야에 재정·행정적 지원을 집중하고 드레스덴공대, 프라운호퍼연구소와 같은 혁신기관을 집적해 기술혁신을 촉진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례는 우리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90년대 말부터 정부는 산업역량이 취약한 시도와 함께 지역별 전략산업을 육성해왔다. 시도별로 지역 환경을 고려해 중점적으로 육성할 산업 목표를 정하고, 기술혁신에 필요한 대학과 혁신기관을 집적하는 한편, 지역 내 첨단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중핵기업 유치에 적극 나섰다. 그 결과 산업 불모지였던 지역의 ‘경제·산업 지도’를 바꾸어 놓았다.
광주는 1997년 IMF 외환위기로 촉발된 ‘아시아자동차’ 도산이 지역기업의 연쇄부도로 이어지면서 큰 어려움을 겪었다. 드레스덴과 유사한 당시 절박한 경제 환경은 타 지역과 차별화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산업을 육성하려는 강력한 의지로 이어졌다. 광주시는 광통신, LED 등 광산업을 전략산업 분야로 건의했고, 정부는 광산업 육성지원계획을 세워 광산업 지원에 나섰다. 한국광기술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분원 등 20여개 혁신기관의 집적과 광주테크노파크를 통해 지역 중소기업을 육성하면서 광주 광산업은 2013년 말, 매출액 2조7000억원 규모 산업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이루었다. 산업육성 초기인 1999년과 비교하면 기업체 수는 7.7배, 고용인원은 4.5배, 매출액은 23.8배나 성장한 셈이다. 연 매출 100억원 이상 기업이 초기에는 한 곳도 없었지만 지금은 21개사로 늘어났다.
강원도 원주 의료기기 산업은 지역의 자구노력으로 시작된 청사진에 정부가 지원을 보태면서 기술혁신과 집적화가 촉발된 사례다. 1998년 의료기기 산업 불모지였던 원주 보건소 건물에 11개 기업이 입주할 수 있는 의료기기 창업보육센터를 개소한 것이 현재 의료기기산업의 기반이 되었다. 당시 인구 3만이 채 되지 않던 독일 남부의 튀틀링겐에 400개 이상의 의료기기 업체가 밀집된 것에 영감을 받아 기업 임대공간을 확충하고, 연세대, 상지대, 한라대 등에 의료기기 관련학과 및 연구소 설립을 통해 기술혁신을 도모했다. 정부는 지역혁신센터와 지역특화센터 설치를 통해 의료기기산업의 사업화 지원을 추진하고 산학연 협력을 유도했으며, 이를 계기로 지역 기업체 수와 생산액이 연간 20~30% 이상 급성장했다.
성공한 지역산업을 살펴보면 중앙과 지방, 그리고 산학연 간 협력을 바탕으로 기술혁신을 끌어낸 것이 주효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정부는 이를 더욱 발전시켜 나가려 한다. 지역이 책임을 갖고 자율적으로 지역산업을 기획하면 중앙에서는 적절한 예산과 법·제도 등을 패키지로 지원할 것이다. 스마트 산업혁명이 지역에서 활성화될 수 있도록 기존 시도 산업을 엔지니어링, 디자인 등 서비스업과 연계 지원하고, 실제 기업수요와 산업생태계에 기초한 지역 간 협력산업도 적극 지원할 계획이다. 대학캠퍼스와 기업연구소가 집적된 산학융합지구를 확대하고, 테크노파크 등 지역혁신기관의 역량을 창조경제 생태계에 맞게 더욱 효율적으로 결집해 나갈 것이다.
창조와 기술혁신은 경제성장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라고 한다. 정부가 지역의 손을 잡고 지역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한 지 15년이 지났다. 드레스덴의 20년을 상전벽해(桑田碧海)로 언급하는 것을 보면 길지 않은 기간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지역의 기술혁신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지역경제의 모습은 창조적으로 변모하고 있다. 끈기 있게 노력하고 지원한다면 머지않아 세계적인 강소기업이 지역마다 등장해 우리 경제 발전을 다시 한 번 견인할 것으로 확신한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