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국제에너지기구가 발간한 전기차량 국제 동향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2012년 현재 전 세계적으로 18만대의 개인용 전기자동차가 운행되고 있다. 전기자동차의 연간 판매량도 2012년에는 2011년 대비 두 배일 정도로 빠르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동차 잡지 ‘모터 트렌드(Motor Trend)’는 미국 테슬라의 전기자동차 모델 S를 올해의 차로 선정했는데, 올해의 차로 비가솔린 자동차가 선정되기는 최초다. 쉐보레가 제작한 전기자동차 볼트(Volt)는 소비자 만족도가 가장 높은 차로 인정받았다는 소식도 들린다.
자동차 시장에서 전기 자동차가 서서히 자신의 입지를 구축해가면서 각국의 전기 자동차 보급 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일본에서는 전기자동차 보급을 위해 2020년까지 급속 충전기 5000개를 보급하겠다는 목표를 세웠고, 중국 정부는 2017년까지 공항, 역사, 공공 주차장 등 베이징 도심 곳곳에 1만개의 전기차 충전소를 세운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전기 자동차 운행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 이외에 차량 구입에 대한 보조금 지급, 도로 부가세 면제 등의 세제 혜택도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서도 전기 자동차 시장 형성에 대응해 몇 가지 정책이 입안 실행되고 있다. 전기차 구매 시 1500만원의 금액 지원 정책이나 충전기 설치 확대 등 보조금 정책과 인프라 확충이 그것이다.
가솔린 자동차에 의한 온실가스 배출을 저감해 기후 변화 위기에 대응하자면 전기 자동차 기술 개발 및 보급 확대는 필요하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보조금 정책과 인프라 확충 그리고 배터리 기술 혁신 등에 필요한 R&D 정책이 전기 자동차 시대로 가는 문을 활짝 열 수 있을까?
배터리 충전 제약으로 인해 현재 전기 자동차 보급 활성화를 위해서는 충전소 구축이 가장 시급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다른 인프라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는 일반 개인이 전기 자동차를 사용하는 데 여전히 어려움이 따른다. 주택용 전기 요금 누진제로 인한 요금 폭탄 문제, 표준화되지 않은 충전 방식 문제 등이 해결돼야 한다. 그리고 가솔린 자동차처럼 도로를 중심으로 충전소를 구축하는 것이 적합한 것인지, 아니면 주택이나 사무실이 밀집해 있는 공간이 적합한 것인지도 고려해야 한다. 즉, 인프라 구축이 소비자들의 전기 자동차 이용 방식에 대한 고려 없이 진행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보조금을 제공해 소비자가 지불하는 비용을 낮추는 것은 초기 전기 자동차 보급 촉진에 도움이 되는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보조금 지원이 새로운 기술에 대한 소비자의 거리감과 구매 의욕 저하를 해소하지는 못한다. 기술제품 구매에는 익숙함이라는 것도 크게 작용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베를린이나 암스테르담 같은 곳에서는 전기 자동차의 미래 고객이 될 수 있는 일반 시민들이 전기 자동차를 미리 사용해볼 수 있도록 전기 자동차 카셰어링을 적극 장려하고 있기도 하다. 카셰어링 회사에서 제공하는 전기 자동차를 이용해본 시민들은 그렇지 않은 시민들보다 전기 자동차를 친숙하게 느낄 수 있다.
전기 자동차와 같은 친환경 기술의 확산에서는 이미지를 구축하는 작업 역시 중요하다. 전기 자동차가 1930년대 가솔린 자동차와의 경쟁에서 밀린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가 여성용 자동차라는 이미지였다고 한다. 환경 인식이 상대적으로 높아진 상황에서 ‘지구 온난화 문제를 해결하는’ 전기 자동차 이미지를 부각하고 노출시키는 작업이 보급 정책 일환으로 기획돼야 한다. 기술제품에 대한 소비자의 구매 행위 역시 제품에 부여된 이미지, 혹은 가치에 영향을 받는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이처럼 전기 자동차 보급 정책은 단순한 경제적 인센티브 제공이나 인프라 확충을 넘어서 소비자의 행위, 기술 이미지 등의 다양한 요소들을 다층적으로 고려해 기획돼야 할 것이다.
박진희 동국대 교양교육원 교수 jiniiibg@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