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시작은 인사(人事)였다.
노무현정부 첫 조각 발표 후 나흘째인 2003년 3월 3일. 노무현 대통령은 17개 부처 차관과 외청장 등 34명의 차관급 인사를 단행했다.
노 대통령은 정보통신부 차관에 변재일 기획관리실장(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과학기술부 차관에 권오갑 과학기술부 기획관리실장(한국나노기술원 이사장 역임), 산업자원부 차관에는 김칠두 산자부 차관보(한국산업단지공단 이사장 역임)를 각각 임명했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청와대 인사수석 역임, 현 인재아카데미 이사장, 사단법인 사랑의빛 이사장)은 차관 인선과 관련, “새 정부의 인사 철학을 반영해 ‘개혁 장관-안정 차관’의 원칙에 따라 내부승진 위주로 인사를 했다”며 “기존 낙점형, 일방 지시형 인사를 지양하고 다양하고 객관적인 자료를 바탕으로 상향식으로 발탁했다”고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날 오후 청와대에서 신임 차관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했다. 노 대통령은 이들과 기념촬영을 한 후 다과를 함께 했다.
노 대통령은 변재일 차관에게 “정통부는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서 또 다른 변화를 이끌어낸 부처”라며 “IT산업의 재도약을 이룩해 달라”고 당부했다.
변 차관은 이날 오후 3시 정통부 14층 대회의실에서 취임식을 갖고 업무를 시작했다.
변 차관은 취임사에서 “정통부는 정보화로 국가사회의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고 정보격차 해소를 통한 디지털 복지사회를 구현함과 동시에 세계 최고의 IT강국으로 우뚝 서서 국가경제 성장의 견인차가 돼야 한다”며 “그런 역할을 충실히 해 정통부가 창의적인 조직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변 차관은 충북 청주 출신으로 연세대 정치외교학과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국제정치대학원을 졸업했다. 행정고시 16회로 국방부에서 처음으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변 차관은 이어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국무총리실 정무비서관과 산업심의관을 거쳐 1998년 6월부터 정통부 정보화기획실장으로 3년간 일하면서 ‘사이버코리아21’ 등을 입안, 세계 최고의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구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이후 2001년 9월부터 기획관리실장으로 재직했다. 국무총리실 산업심의관 재임 시는 IT총괄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정보화촉진기본법 제정과 정보화추진위원회 설치 등을 적극 지원했다. 특히 정보화추진위원회 실무위원장을 놓고 부처 간 줄다리기가 치열할 때 총리실 행정조정실장이 위원장을 맡도록 조정역할을 했다.
그는 행정 경험이 풍부하고 부처 간 업무조정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외유내강형으로 부내 직원들의 신망도 높았다. 해박한 지식과 정연한 논리를 바탕으로 추진력도 겸비했다.
변 차관은 이날 오전 청와대에서 차관 내정을 통보받았다.
변 전 차관의 증언.
“그날 청와대로부터 차관 내정을 통보받았습니다. ‘차관으로 내정됐으니 열심히 일해 달라’며 ‘오후에 임명장 수여식이 있으니 참석하라’고 했습니다.”
그는 진대제 장관(현 스카이레이크인베스트먼트 회장)에게 청와대 측의 차관 통보사실을 보고했다.
진 장관은 “차관 승진을 축하한다”면서 “변 실장을 차관후보 1순위로 청와대에 추천했는데 잘됐다”며 악수를 청했다. 당시 정통부에서 차관 자리를 놓고 변재일 실장과 김창곤 정보화기획실장(정통부 차관 역임, 현 한국디지털케이블연구원장)이 경합했다.
변 차관의 기억.
“인사를 앞두고 장관실에서 진 장관과 면접을 했습니다. ‘차관이 되면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이냐’는 등을 물었습니다.”
진 장관의 회고.
“당시 차관 추천 전에 해당자들과 면접을 했습니다. 정통부 내 1급 실장은 변재일 실장과 김창곤 실장 두 사람이었습니다. 전직 장관 몇 분의 의견을 구했고 내부 평가, 그리고 정통부 출입기자들의 평판을 들었습니다. 두 사람 다 차관 자격이 충분했고 평판도 좋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정통부는 물론이고 관계에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습니다. 차관은 장관의 보완재 역할을 해야 하잖아요. 다른 부처와 업무 협조나 조정능력 등을 고려했습니다.”
진 장관은 재임 시 정통부와 산하기관 인사에서 전권을 행사했다. 그는 학연이나 지연, 서열 등을 배제하고 오직 적재적소(適材適所)의 인사를 했다. 인사권 행사는 조직 장악에 필수였다.
정찬용 청와대 인사보좌관의 말.
“노 대통령은 부처 인사에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공직 임명권자는 대통령이지만 부처 인사권은 장관에게 위임했습니다. 청와대는 인사보좌관실에서 평판조회를 했고 민정수석실에서 검증을 했습니다. 문제가 없으면 진 장관이 추천한 인물을 임명했습니다.”
차관 인사 며칠 후인 3월 7일.
참여정부 첫 국정토론회가 1박 2일 일정으로 경기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열렸다. 토론회에는 고건 국무총리(대통령 권한대행 역임, 현 기후변화센터 명예이사장)를 비롯해 새 정부 각료와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현 새정치민주연합 국회의원) 등 청와대 수석·보좌관 등 38명이 참석했다.
노 대통령은 국정토론회 첫날 인사말을 통해 “문민정부는 CDMA 기술을 개발해서 국민이 먹고사는 데 큰 도움을 줬고, 국민의정부는 IT산업 기초를 닦아서 앞으로 몇 년간 먹고살 밑천을 마련했다”면서 “참여정부도 5년에서 10년 먹고살 수 있는 먹을거리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첫날 국정토론회는 성경륭 한림대 교수(청와대 정책실장 역임)가 노무현정부의 국정철학과 비전을 발표한 후 장관들과 수석·보좌관들이 6개조로 나눠 분임토의를 했다.
이튿날에는 참여정부의 인사원칙과 다면평가제를 놓고 토론이 진행됐다. 노 대통령이 다면평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누구도 말문을 열지 않았다.
그때 진대제 정통부 장관이 나섰다.
“기업은 1990년부터 다면평가를 도입했습니다. 시행결과 부작용이 많아 기업에서는 적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다면평가는 일을 적당히 하거나 좋은 게 좋다는 식 혹은 아랫사람 눈치를 보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다면평가의 아킬레스건을 지적했다.
진 장관의 말.
“순간 토론회장 분위기가 싸늘해지더군요. 아차 싶었어요. 그래서 대안(代案)을 제시했어요. 정통부 인사를 할 때 전임 장관 세 명의 의견과 기자들의 평판 그리고 부내 인사팀이 평가한 우선순위 세 개 포인트 체크로 다면평가의 문제점을 보완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날 식당에서 진 장관은 노 대통령 맞은편에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과 같이 앉아 점심을 먹으며 대화를 했다.
진 장관의 말.
“대통령께 ‘요즘 중소기업이 어렵다. 지원정책을 잘 마련해야 한다’고 했더니 ‘그건 대기업들이 중소기업 기술을 빼앗아 가서 그런 것 아니냐. 대기업이 잘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진보 대통령의 시각(視覺)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그날 노 대통령은 진 장관 발탁 일화도 소개했다.
“2월 초 문 실장이 진 장관이 조찬모임에서 발표한 자료를 주며 추천했어요. ‘몇 년 후면 중국이 한국 이동통신과 반도체 기술을 추월할 것’이라고 했다더군요. 나는 ‘국민을 겁주는 사람은 장관이 될 자격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후 문 실장이 ‘문제점을 알면 대책도 수립할 게 아니냐’며 다시 추천하더군요.”
진 장관은 삼성전자 사장 시절인 2003년 1월 28일 오전 대한상공회의소가 주최한 조찬모임에서 ‘디지털미디어산업의 미래’라는 주제발표를 했다. 그는 중국의 기술추격을 경고하면서 강력한 성장엔진 육성과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자리에 문 실장이 참석했던 것이다.
그해 3월 25일. 차관 경합에서 탈락한 김창곤 정보화기획실장이 진 장관에게 사표를 냈다.
김 실장은 기술고시 12회로 정통부에서 통신기술심의관, 전파방송관리국장·정보통신지원국장·정보통신정책국장·기획관리실장·정보화기획실장 등 요직을 두루 역임했다.
김 전 실장의 말.
“후배들을 위해 자리를 물러나는 게 도리이자 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얼마 후 한국정보보호진흥원장에 취임했습니다. 1·25 인터넷대란 이후여서 조직을 재정비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허허로운 심정으로 용퇴했던 그는 2004년 1월 정통부 차관으로 금의환향했다.
그해 4월 14일.
정부는 정통부 1급 인사를 단행했다. 공석인 정통부 기획관리실장에 노준형 정보통신정책국장(정통부 장관, 서울과학기술대 총장 역임, 현 김앤장 고문)을 정보화기획실장에 석호익 서울체신청장(정보통신정책연구원장 역임, 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초빙연구원. 통일IT포럼 회장)을 각각 승진 발령했다.
노 실장은 서울 출신으로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1회로 공직에 입문, 정통부 정보화기획심의관과 국제협력관, 전파방송관리국장을 지냈다.
석 실장은 경북 성주 출신으로 영남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행정고시 21회로 정통부 정책심의관, 정보기반심의관, 우정국장, 전파방송관리국장, 정보통신지원국장을 역임했다. 서울체신청장이 본부 1급으로 승진한 사례는 그가 처음이었다.
정통부는 4월 23일 국장급 인사를 했다. 정보통신정책국장에는 유영환 정보보호심의관, 전파방송관리국장에는 유필계 공보관을 전보했다. 이어 26일 정보통신진흥국장에 김동수 감사관을, 감사관에는 형태근 국장을 전보했다.
진 장관의 증언.
“실·국장 인사는 철저히 적재적소를 원칙으로 했습니다. 그동안 업무보고 등을 통해 능력을 파악했습니다. 업무에 따라 추진력, 전문성, 문제해결 능력, 치밀성, 강직성 등에 초점을 두고 인사를 했습니다. 노 실장은 합리성, 석 실장은 전문성과 추진력을 평가해 발탁했습니다.”
IT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