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만 느껴지는 소프트웨어에 쉽게 다가가는 도서 ‘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가 출판됐다. 20세기 중엽에 등장한 컴퓨터라는 기계는 다양한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기능을 실현했다. 그 뒤 관련 기기의 발달과 함께 소프트웨어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이제 소프트웨어는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문화형식으로 자리 잡고 있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발전은 그 변화를 더욱 촉진하고 있다. 소프트웨어는 앞으로 우리 사회를 어떻게 바꿔 나갈까.
오늘날 대표적인 뉴미디어 학자로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레프 마노비치(Lev Manovich)가 최근 내놓은 저서 소프트웨어가 명령한다는 이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1968년 가을 ‘마우스’를 개발한 더글러스 엥겔바트는 샌프란시스코 컴퓨터학술대회에서 관점 컨트롤(view control)이라는 워드 프로세싱 기능을 선보인다. 이 기능은 텍스트 정보를 시각적 그래프로 보여 줌으로써 정보 시각화의 탄생을 알렸다. 엥겔바트는 앞으로 컴퓨터 이용자가 텍스트 세계를 ‘수평적’으로 넘나드는 것은 물론이고 다층적인 정보 사이를 ‘수직적’으로 오고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2005년에는 웹에서의 혁명이 일어났다. 2005년 6월 28일 구글 어스(google earth) 서비스가 시작됐다. 고해상도 사진과 동영상, 역사적 이미지, 해저 영역, 특정 지표 시점의 달과 화성의 모습, 실시간 교통과 같은 위치 기반 정보 값이 스크롤과 클릭 몇 번으로 빠르게 전달된다. 또한 2008년에는 구글 스트리트 뷰(google street view)가 첨가되면서 360도 파노라마 형식의 거리 사진을 이용자가 볼 수 있게 된다. 엥겔바트의 예견이 웹에서 구현되는 문화로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이책은 이러한 컴퓨터 소프트웨어 진화의 역사를 추적한다. 마노비치는 세계·인간·데이터가 표상되는 원리,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어 정보를 공유하고 협업하는 방식을 소프트웨어가 결정한다고 본다. 21세기 문화를 이끌어 가는 핵심 원동력이 소프트웨어라는 것이다.
도서는 앨런 케이, 테드 넬슨, 이반 서덜랜드 등 1960∼1970년대 컴퓨터 구루들의 초창기 비전을 소개하는 데서 출발한다. 그들이 비전이 지금 현재 어떻게 실현됐는지, 어떤 변화와 수정을 거치며 진화했는지 분석한다. 포토숍과 애프터 이펙츠와 같은 대중적 디자인 프로그램, 구글 어스와 빙 맵과 같은 인기 웹서비스, 디자인·모션그래픽·상호작용에 관한 예술 프로젝트 사례를 통해 현대 미디어 문화에 소프트웨어가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본다. 소프트웨어 기능들과 프로그래밍 언어들의 호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등장한 ‘리믹스 문화’의 향방도 짚는다.
레프 마노비치는 2001년 뉴미디어의 언어(The Language of New Media)로 널리 알려진 미디어 학자다. 뉴미디어의 언어는 뉴미디어에 대한 정의, 개념, 그리고 올드미디어와의 관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고 ‘소프트웨어 연구’ 분야를 개척한 저술로 평가받는다. 특히 뉴미디어와 영화 관련 연구에서 핵심 문헌으로 인용되고 있다.
이 책은 뉴미디어의 언어에서 간략히 소개했던 ‘소프트웨어 연구’를 본격 전개한다. 소프트웨어를 깊이 있게 이해하려는 일반 독자와 미디어 연구자와 디자이너, 프로그래머에게 새로운 관점을 제공할 것이다. 누구나 쉽게 소프트웨어 진화의 원리와 방향을 확인할 수 있다.
레프 마노비치 지음. 이재현 옮김. 커뮤니케이션 펴냄. 2만8000원.
전지연기자 now2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