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현의 미디어 공명 읽기]<28>디지털 합성

영화 ‘쥬라기 공원’에서 사람과 공룡이 뒤섞여 초원을 박진감 넘치게 달리는 장면은 압권이다. 이 장면은 초원을 달리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촬영한 뒤 이 실사 화면을 컴퓨터 그래픽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공룡의 움직임과 디지털 합성(digital compositing) 방식으로 결합한 것이다.

멜리에스의 1898년 영화 ‘네 개의 골칫거리 머리들’
멜리에스의 1898년 영화 ‘네 개의 골칫거리 머리들’

우리가 2000년대 이후 흔히 접하는 디지털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이 디지털 합성으로 만들어진다. 전형적 사례는 실사로 만들어진 배경과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진 캐릭터의 결합이다. 그러나 디지털 합성으로 결합될 수 있는 요소에는 제한이 없다.

디지털 합성의 기본적인 원리는 레이어 구조에 있다. 이미지 편집 소프트웨어의 대명사인 ‘포토숍’은 레이어들의 결합으로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어낼 수 있게 해준다. 예를 들어 사진 위에 글자를 넣을 경우 사진 이미지와 글자는 각각 별도의 레이어로 구성된다. 새로운 글자나 이미지를 추가로 그 위에 중첩하고 싶으면 또 다른 레이어에 글자나 이미지를 넣은 후 결합하면 된다.

디지털 합성 이미지는 대응하는 각 레이어의 픽셀별로 픽셀이 가지고 있는 투명도와 색상(RGB) 값들을 평균내 만들어진다. 산술적으로 계산만 하면 픽셀 값이 결정된다는 점에서 결합되는 레이어 수는 무수히 늘어날 수 있으며, 이런 점에서 그 수에는 원칙적으로 한계가 없다.

1980년대 이후 할리우드 영화는 컴퓨터 그래픽 기술을 도입해 자신의 표현력을 크게 확대시켰다. 단순하게 말하면 판타지 소설의 캐릭터, 우주 전쟁, 외계인, 정글, 복제인간 등 상상 가능한 모든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단순히 특정 형상을 만들어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모든 시각적 요소들을 결합시킬 수 있는 디지털 합성 기술을 활용하면서 그 효과가 배가되었다.

1980년대 이전에 영화는 장면들을 결합시키기 위해 이른바 광학 합성(optical compositing) 기술을 활용했다. 이는 결합하고자 하는 두 장의 필름에 빛을 투과시켜 최종적인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었다. 빛을 이용한 단순한 합성 이외에도 한 장의 필름에 각기 다른 대상을 두 번 찍는 다중 노출 방식, 특정한 색상을 제거하는 블루 매트 방식 등도 광학 합성의 일종이다. 1898년 멜리에스는 다중 노출을 이용해 동일한 사람의 머리 네 개가 동시에 등장하는 놀라운 장면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아날로그 광학 합성은 빛이 필름들을 통과하면서 감쇄되기 때문에 세 장 이상의 이미지를 결합하는 것은 무리였다. 광학 합성의 신기원을 이룩한 1977년 ‘스타워즈’는 광학 합성과 모션 컨트롤 카메라를 활용해 우주 전쟁 장면을 만들어냈는데, 여러 번 합성하더라도 일정한 해상도를 유지하기 위해 일반적인 35㎜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거의 사용되지 않던 75㎜ 필름을 사용했다.

디지털 합성과 같은 컴퓨터 그래픽 기술은 광학 합성의 이 모든 한계를 극복하며 과거 B급 영화에나 사용되던 특수 효과를 영화 제작의 중심으로 끌어들였다. 이제 디지털 특수효과는 디지털 영화와 동의어가 되었다.

이미지를 중첩시켜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욕망은 아날로그 시대와 디지털 시대를 공명하며 계속되고 있다. 실제 현실에 가상의 정보 층위를 덧붙이는 증강 현실(AR)은 중첩 이미지에 대한 욕망의 또 다른 표현이다. 병치와 더불어 중첩은 우리의 표상 세계를 구성하는 핵심 문법이 되고 있다.

이재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