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14회

하지윤 작가의 아틸라, The 신라 제14회

2. 너무 오래된 운명

6



쨍 마방의 자물쇠가 밤의 은밀함을 무시하며 튕겨져나갔다. 일제는 거침없이 일어났다. 얼굴에 가면을 쓴 자는 일제에게 냅다 매질을 하였다. 어디서 배운적도 들은적도 없는 우스운, 개차반의 매질이었다. 일제의 품속에서 황금검을 들어내려 똥방귀를 뀌어가며 애를 썼다. 하지만 황금검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면을 쓴 자는 굳어버렸다. 일제가 찌그러진 코를 바로잡으며 일어났다. 그의 눈빛은 창과 검으로 무장해 있었다.

“넌 괴물이냐?”

가면을 쓴 자는 시퍼런 칼을 들었다. 그러자 일제가 보란듯이 황금검을 손에 쥐었다. 가뿐했다. 가면을 쓴 자는 너무 놀라 칼을 떨어트렸다. 황금검에서 황금의 실타래가 굽이굽이 돌았다. 가면을 쓴 자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다리의 힘을 놓았다.

“나를 비롯해 나의 후손은 죽음도 결코 침범할 수 없다.”

일제의 몰아치는 선언에 가면을 쓴 자는 달아나며 떠들었다.

“우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러나 가면을 쓴 자는 이미 저승으로 달리고 있었다.

“내 너의 불량한 음성을 기억하겠다.”

용연향의 대상들은 깊이 잠들어 있었다. 장건은 미리 준비한 오피움을 그들 방바닥으로 슬슬 밀어넣었다. 꺼무룩한 연기가 그들의 잠속으로 살금살금 기어들어갔다. 장건은 건방진 도둑의 발걸음으로 그들의 잠속을 피해 황금검에게 다가갔다. 황금의 실타래가 거친 해협의 물길을 가르듯 아름다웠다.

“아, 이것은 하늘이 내리신 검이로다. 이 검의 주인은 세상에 바로 그 밖에 없다.”

장건은 진짜 오랑캐의 낯짝으로 황금검을 잡았다. 숨이 넘어갈 듯 했다. 손이 땀으로 범벅이었다. 그런데 황금검은 잡히지 않았다.

“이건 짐승의 산(山)이로다. 움직일 수 없구나.”

장건은 순류도 역류도 아닌 돼지꼬리를 만난 꼴이었다. 그는 참수당할게 빤했다. 그때였다. 한나라의 충신이라는 오랑캐, 장건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바로 황금빛깔 능라였다.

“아, 세레스의 깃발이로다. 날아오는 화살을 막고 칼마저 튕긴다는 바로 그 깃발이로구나. 오호, 드디어 한이 위험한 족속인 흉노를 대(大) 중원에서 몰아내리라.”

그는 황금빛 능라를 황금검에게 급히 던졌다. 황금검은 능라속에 아득히 갇혔다. 속세의 부귀영화를 외면한 구도자의 신세가 되었다. 그제서야 장건은 움켜잡았다. 장건은 자신의 품으로 빨려들어온 황금검, 새로운 세상을 안고 그곳을 탈출했다. 퇴로는 없었다.

눙라속에 숨은 황금검은 사막의 서걱거림을 견뎌내며 쉬지 않고 달렸다. 달리고 또 달렸다. 달리는 말의 말발굽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말이 그대로 주저앉아 남루하게 쓰러졌다. 말은 모든 구멍으로 피를 쏟았다. 한나라 도성에 도착한 것이다.

장건이 무제에게 황금검을 겸허히 바쳤다.

“황제시여. 이 황금검의 주인은 바로 세상에 오로지 한 분이십니다.”

무제가 크게 기뻐하며 장건에게 황금검을 받아 능라를 겁없이 벗겼으나, 황금검은 그저 초라한 누런 빈약한 검일 뿐이었다. 눈부신 탐욕도 찬란한 열정도 없었다. 장건은 기절할 뻔했다. 하지만 무제는 검을 버리지는 않았다. 무제는 돌아서 가버렸다. 장건은 무안함도 아니었다. 민망함도 아니었다. 역사의 무게가 자신을 짓누르고 있었다.

“앗! 무제가 아니라면, 위험한 족속의 말달리던 그가 바로 주인이란 말인가? 그란 말인가?”

장건은 자신의 시대가 끝나가고 있음을 알았다. 아니 세상의 주인이 바뀌고 있음을 알았다.

글 소설가 하지윤 lif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