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차량용반도체 한국이 뒤질 이유 없다

전기전자장치(전장)화가 급진전하면서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급성장한다. 인포테인먼트기기용과 센서 칩뿐만 아니라 마이크로 컨트롤러 유닛(MCU), 엔진 컨트롤러 유닛(ECU)과 같은 핵심 장치까지 수요가 급증한다. 정보통신기술(ICT) 흐름이 스마트폰에서 자동차로 옮겨가고 사물인터넷 시대가 오면서 수요는 더욱 늘어난다.

한국은 반도체와 자동차 산업이 동시에 발달한 몇 안 되는 나라다. 차량용 반도체 시장을 선도할 자격이 충분하다. 하지만 90% 이상 수입하는 것이 현실이다. 이상한 일이다.

반도체 기술은 세계 최고 수준이나 메모리에 치우친 것이 문제다. 일부 시스템반도체 시장에 이름을 올렸지만 전력, 자동차 등 각종 산업용 시스템반도체를 개발하고 공급할 역량은 부족하다. 차량용 반도체설계 전문업체(팹리스)도 대부분 인포테인먼트 기기용에 치우쳤다. MCU, ECU와 같이 부가가치 높은 핵심 차량용 반도체 분야의 팹리스는 적다.

더 큰 문제는 자동차와 반도체 업체 간 교류와 협력이 미흡하다는 점이다. 현대·기아차가 일부 차량용 팹리스와 협력을 하지만 경쟁사에 비해 협력 폭이 좁고, 강도 또한 약하다. 팹리스를 비롯한 차량용 반도체업체는 매출을 올릴 구석이 없으니 좀처럼 몸집을 키울 수도, 장기적인 연구개발(R&D)에 투자할 수도 없다.

자동차 업체로선 검증된 외산 반도체를 가져다 쓰는 게 당장 낫다. 그러나 자동차 경쟁력이 ICT 융합에서 나오는 시대다. 핵심인 차량용 반도체 기술 역량을 스스로 쌓아야 한다. 특히 가격 협상에서 외국 업체에 휘둘리지 않으려면 국내 업체를 키워야 한다.

외국 차량용 반도체업체는 오랜 기간 기술을 축적했다. 만만한 상대가 아니다. 그렇다고 국내 팹리스가 도무지 넘지 못할 산은 아니다. 적절한 지원과 수요만 만들어 준다면 도전할 팹리스는 많다. LG전자를 비롯한 대기업도 가세한다. 반도체와 자동차 강국이 차량용 반도체를 외산에 의존한다는 부끄러움을 빨리 씻으려면 지금 당장 움직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