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수 칼럼]과학을 말로 하라는 사회

[신화수 칼럼]과학을 말로 하라는 사회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죽은 자만이 진실을 말한다. 어느 말이 맞을까. 쓰임새와 상황이 달라 선택지가 되지 않을 수 있다. 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확실한 것은 앞보다 뒷말에 진실을 찾는 의지가 담겼다는 점이다. 죽음의 진실을 찾는 이들이 최근 뉴스 한복판에 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최근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부검결과를 공개, 발표했다. 유 전 회장 시신이 틀림없지만 사인을 알 수 없다는 결론이다. 이로써 들끓었던 시신 논란이 끝날 줄 알았는데 이어지고 더 부풀려졌다. 국과수가 조작했다는 유언비어까지 나돌았다. 급기야 경찰은 허위사실 유포에 대한 내사에 착수했다.

정말 슬픈 일이다. 최고 법의학 기관 발표도 믿지 않으면 도대체 뭘 믿겠다는 것인가. 국과수 조작이라니 더 어처구니가 없다. 지금이 군사정권 시절이 아닌데도 말이다. 정부 신뢰가 얼마나 땅에 떨어졌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척박한 환경 속에 치열하게 진실을 파헤쳐 온 법의학자들이다. 누가 뭐라 해도 국과수 발표라면 100% 믿는다.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다. 발표 내용이 아니라 발표 자체다.

국과수는 수사기관 의뢰를 받아 과학적 분석 결과를 알려주는 기관이다. 수사기관 외에 누구와도 접촉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도 안 된다. 유병언 사건처럼 국민적 관심사라면 예외로 봐줄 만하다. 그래도 발표 주체는 수사기관이어야 하지 국과수여선 안 된다.

기자회견장에 서중석 국과수 원장이 직접 나왔다. 내로라하는 법의학계 인사도 총출동했다. 처음 보는 장면이다. 서 원장도 언급했듯이 과학자가 있기에 결코 적절하지 않은 자리다.

과학자의 언어는 데이터다. 가설을 세워 입증한 데이터로 말을 한다. 과학자가 그 이상을 말하는 순간 과학이 아닌 영역으로 넘어간다. 정치일 수도, 사회일 수도 있다. 이날 불려나온 서 원장과 법의학자들은 과학 이상의 것을 요구받았다.

국과수 발표가 자의일 수도, 타의일 수도 있다. 어느 쪽이라도 문제다. 자의라면 과학의 권위를 스스로 깎아내렸다. 타의라면 그 권위를 누군가가 악용했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과학자가 연구만 하고 세상을 향해 입을 닫고 살라는 얘기가 아니다. 과학의 권위는 오로지 데이터에서 나온다는 것을 강조할 따름이다. 과학자가 데이터를 믿어달라고 입 밖에 내면 이는 과학이 아니다. 황우석 사태 때 확인하지 않았는가.

과학적 진실은 사회의 마지막 보루이어야 한다. 이것마저 무너지면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사회가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과학적 진실이 권력과 대중의 이해관계에 휩싸인 장면을 목격했다.

4대 강 논란에 토목공학자들이 두 패로 갈려 싸웠다.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 과학계의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났다. 보루에 금이 생겼다. 법의학자들이 있지 않아야 할 자리에 섰다. 엉뚱한 불신과 오해를 풀려다 더 황당한 불신과 오해를 샀다. 금은 더 벌어졌다. 이 틈새가 더 이상 벌어지면 과학은 물론이고 사회도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진다.

한국 사회에서 과학은 도대체 무엇인가. 과학에 무엇을 원하는가. 과연 누가 그 권위를 떨어뜨리는가. 과학자인가 사회인가. 의문이 꼬리를 물지만 답은 나오지 않는다. 괜히 국과수 탓만 하게 된다. 아무리 생각해도 국과수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어야 했다. “넘긴 분석자료 외에 더 말할 게 없으니 기자회견을 할 바엔 차라리 옷을 벗겠다.”

신화수 논설실장 hsshi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