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근로자들의 백혈병 피해 협상이 제자리 걸음을 걷는 가운데 또 다른 근로자가 백혈병으로 사망하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했다.
반도체 백혈병 피해자 대책모임인 반올림(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 지킴이)은 삼성전자 반도체 온양사업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항암치료 중이던 이모씨(46·남)가 지난 1일 밤 숨을 거뒀다고 4일 밝혔다.
이씨는 지난 27년간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근무했으며 1991년부터 온양 공장에서 일했다. 주로 설비 유지·보수 업무를 담당했다. 이씨는 한 달여 전 몸의 이상을 느껴 사내 병원에 갔다가 큰 병원으로 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이후 찾아간 대학병원에서 급성 림프구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씨는 서울 삼성의료원으로 옮겨 항암치료를 받던 중 증상이 악화돼 1일 밤 세상을 떠났다.
반올림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온양 공장은 에폭시 수지류의 화학 물질과 방사선 설비 등 백혈병 유해 요인으로 지목되는 위험 인자들이 복합적으로 존재하는 사업장”이라며 “이미 많은 직업병 피해자들의 제보가 있었던 곳”이라고 밝혔다. 반올림 관계자는 “유족의 뜻에 따라 산업 재해 신청 절차를 밟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삼성전자와 반올림은 반도체 사업장 근로자들의 백혈병 피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협상을 벌여왔다. 지난주 다섯 번째 공식 협상을 가졌지만 좀처럼 간극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이번 추가 사망자 발생은 양측이 극명하게 대립 중인 피해보상 협의 대상 논의에 변수가 될 전망이다. 삼성 측은 현재 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피해자 가족에 대해서만 보상책을 협의하자는 입장인 반면에 반올림은 협상에 참여하지 못한 피해자는 물론이고 드러나지 않은 잠재적 피해자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올림 관계자는 “이번 사례처럼 새로운 피해자가 나올 때마다 매번 협상을 할 수는 없지 않냐”고 반문했다.
삼성전자는 이씨 사망에 관한 입장을 묻는 본지 질의에 4일 오후 현재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이호준기자 newlevel@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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