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들어 스마트폰·자동차·조선 등 우리나라 주력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차지하는 점유율이 낮아지고, 관련 대기업들의 영업이익도 급감하고 있다. 제조업 전반에 걸쳐 위기를 걱정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국과 신흥국의 거센 추격과 원화 강세 등 여러 원인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우리 제품의 대외 경쟁력이 떨어지고 있어서다.
현재의 힘든 상황을 감안할 때 결국 앞으로 몇 년은 우리 기업들이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에서 새로운 시장을 선점하는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거듭날 수 있을지, 또 우리나라가 진정한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을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시기가 될 것이다. 이런 인식과 위기감을 바탕으로 정부도 지난해부터 ‘창조경제’라는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다양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우리나라의 기존 주력 산업을 혁신하고, 에너지·환경·바이오 등 미래 성장 동력 산업을 바탕으로 신시장을 창조하는 데 필요한 핵심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소재 산업이다. 제조업의 근간을 이루는 것이 바로 첨단 소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산업이 경량화와 스마트·친환경 자동차 조기 상용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소재의 진화가 요구된다. 소재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다기능·지능형 감성 소재로 기술진입 장벽이 높은 세라믹도 좋은 예다. 세라믹 소재는 일본·미국 2개국의 극소수 기업이 세계 시장의 약 70%를 독점하고 있다. 원천기술 확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다.
미국 코닝은 지난 2000년대 후반 애플의 요청에 따라 스마트폰 액정화면 보호용 세라믹 강화유리인 ‘고릴라(Gorilla) 글라스’를 개발해 현재 세계 시장을 독점하고 있다. 이에 관한 원천기술은 오래전인 1960년대 자동차용 유리를 개발하면서 확보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주력 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천기술이 중요하다. 이는 하루아침에 이룰 수 있는 쉬운 일이 아니다. 오랜 기간 꾸준하고 다양한 연구 시도와 치열한 기술·시장 경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나라는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한 해 약 12조원에 달하지만 그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한 수준이다. 아직도 한정된 예산과 효율적 집행이라는 명분 아래 국가 R&D 사업 과제 선정 시 중복 지원 여부를 최우선 기준으로 삼아 1개 컨소시엄(산·학·연)만 선정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경쟁이 제한돼 다양하고 도전적인 연구 사업이 제약을 받고, 실패의 위험 또한 매우 크다.
따라서 미래 성장동력 확보를 위한 국가적 차원의 대형 R&D 사업에 대해서는 복수 이상의 컨소시엄을 선정하여 추진하는 파격적인 정책 전환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컨소시엄 간 치열한 경쟁을 유도하면 보다 창의적인 연구 성과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다. 개발 과정에서 필요하면 컨소시엄 간 상호 협력을 확대할 수도 있다. 자연스레 다양한 R&D 성과를 새롭게 창출하는 등의 긍정적인 효과가 기대된다.
우리나라 스마트폰이 세계 최고 수준의 제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국내 업체는 물론이고 애플과 같은 세계적인 기업과의 치열한 경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조경제를 꽃피우는 주역인 우리 소재 산업이 세계 시장에서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R&D 주체 간의 치열한 경쟁이 필수다. 이를 위해 국가 소재 R&D 사업에서 2트랙 또는 3트랙 형태로 지원하는 과감한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민 한국세라믹기술원장 km2458@kicet.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