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서울 송파구에서는 승객 3명이 숨지고 16명이 다치는 버스사고가 있었다. 사고 사흘 전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했고, 당일에도 무려 15시간 넘게 근무했던 운전기사한테 안전운전을 기대할 수 있었겠는가?
예측되는 위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이 안전 불감증이다. 안전할 것이라는 판단착오는 곧 닥칠 위험을 전혀 예상하지도 대처하지도 못하게 만든다. 더욱이 위험한줄 알면서도 미리 예방하거나 피하지 않고 뛰어드는 것은 용기도 아니고 도전도 아니다.
1986년 미국 우주왕복선 챌린저호는 추진체 연결부의 결함을 알고도 발사를 강행해 폭발하고 말았다. 2003년 콜럼비아호는 연료탱크에서 단열재가 떨어져 폭발했다. 안전보다는 성공의 기대치에 무게를 둔 의사결정, 유사한 문제들을 몇 차례 넘기면서 생긴 내성으로 발생한 사고였다.
세계 최고의 과학자 집단인 미항공우주국(NASA)도 안전 불감증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 사회는 해병대 캠프 사고, 경주 리조트 붕괴 사고, 세월호 침몰 사고 등 잇따른 ‘인재’로 충격에 빠져있다.
정부는 효율적이고 강력한 통합 재난 대응체계를 구축하기 위한 가칭 ‘국가안전처’를 신설할 계획을 내놨다. 개개인 안전의식을 고양하고, 사회 전반에는 안전문화가 고도화돼야 한다.
안전문화는 기존의 의식, 행동의 변화를 통한 국민생활 전반에 안전 태도와 관행의식이 체질화되어 가치관으로 정착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성장 제일주의 풍토에서 안전을 살피는 일은 비용만 낭비하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비용과 투자 없는 안전은 포호빙하(暴虎馮河)에 불과하다. 범을 맨손으로 두드려 잡고, 큰 강을 배 없이 걸어서 건너는 것처럼 무모하기 이를 데 없는 만용일 뿐이다.
1970년대 포드의 ‘핀토’라는 차는 뒤에서 추돌당하면 연료탱크가 쉽게 폭발해 500여명이 죽고 많은 사람이 화상을 입었다. 그런데 포드는 이 문제점을 알고 있으면서도 조치하지 않았다. 죽거나 다치는 사람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전체 연료탱크를 고치는 비용보다 훨씬 저렴했기 때문이다. 안전에 투입되는 비용을 경영논리로만 분석했던 포드는 회사가 존폐의 위기까지 몰리는 홍역을 치러야 했다. 하물며 최고의 신뢰도를 요구하는 항공우주, 원자력, 철도 등 고위험산업의 안전비용은 절대적 가치로 인식돼야 한다.
NASA의 예에서 보았듯, 안전과 관련된 정책과 의사결정은 안전한 것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돼야 한다. 포드처럼 안전비용을 대차대조표 테이블에 올려서도 안 된다. 안전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제일 우선시해야 하는 최고의 가치여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정부가 안전사회를 위한 정책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예산을 늘리고, 안전 전문 인력만큼은 반드시 충원하겠다고 공언한 것은 매우 다행한 일이다. 원자력계에 몸담고 있는 나도 무한 책임과 사명감을 새삼 느끼게 된다.
세월호 사고의 뼈저린 아픔과 슬픔은 국민 누구나 누릴 수 있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건설하자는 다짐으로 승화돼야 한다. 안전에 필요한 비용은 선택이 아니다. 우리의 행복과 안심을 위한 필수비용이다.
안전기준과 점검이 강화된 하드웨어는 물론, 정부의 정책과 제도, 사회의 정의와 문화, 개인의 의식과 행동 등의 소프트웨어가 제대로 작동해야 안전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위험사회에서 탈출하기 위한 대변혁의 투자와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김무환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장 mhkim@kins.re.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