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아쿠아 시어터’라는 욕실 AV 시스템이 선보였다. 전자기업이 아닌 인테리어 업체가 내놓은 제품으로 샤프에서 만든 32인치 TV와 클라리온의 디지털 스피커가 들어갔다. 방수기능을 갖춘 리모컨도 제공돼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자유롭게 TV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가격은 공사비를 제외하고 우리 돈 약 380만원이다.
욕실 TV는 TV 판매 ‘명분 쌓기’의 연장선이다. 스마트·3차원(3D)·초고화질(UHD) 등 각종 수식어가 쏟아지고 있지만 TV는 우리 삶에서 멀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1~2인 가구 급증과 함께 TV 없는 가구가 늘어나고 있고, 스마트폰과 통신망 발달로 TV 없이도 고화질 방송을 볼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TV 제조사 마케팅 부서는 고민이다. UHD TV를 중심으로 새 TV를 팔아야 하는데 소비자의 구입 명분이 부족하다. ‘압도적 화질’ ‘꿈의 화질’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기존 고화질(HD)을 두고 “깨끗하게 잘 나오는데 왜 바꾸냐”라는 반문에 막상 답을 꺼내기 어렵다. 2년 전 디지털 전환 때는 “TV를 바꿔야 방송을 본다” “정부 시책이다”라는 이유가 있었지만 표준도 콘텐츠도 없는 UHD TV에는 이마저도 붙일 수 없다.
결국 TV도 혁신해야 한다. ‘콘텐츠’라는 핵심 자산을 기반으로 사람들을 TV 매장으로 부를 요인은 만들어야 한다. 곡면 TV를 내세워 몰입감 강화라고 하지만 “같은 값에 더 큰 평면 TV를 사겠다”는 소비자의 마음을 돌리기 전까지는 완벽한 혁신이 아니다. 혁신이 없다면 오늘날 세계 1등 한국 TV 산업은 붕괴할 수밖에 없다.
다행히 우리 업계도 혁신에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 동교동에 있는 스마트미디어이노베이션센터에 입주한 11개 스마트 TV 앱 개발 스타트업들이 시동을 걸었다. 이들은 기존 스마트 TV 앱이 스마트폰의 것을 그대로 가져와 실패했던 것을 거울삼아 건강, 요리 등 실생활과 밀접한 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한 개발사 대표는 “스마트폰의 카카오톡처럼 TV 앞에 사람을 모으는 킬러 앱을 선보이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욕실까지 TV를 가져가는 억지 혁신이 아닌 생활을 바꾸는 TV를 만들겠다는 의지다.
서형석기자 hsseo@etnews.com